"정의롭고 새로운 사회 건설 열망으로 이어져"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 2016년은 '분노의 한 해'였다.

분노한 민심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더이상 '의혹'과 '논란'에 참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노는 지난 몇년간 축적돼 온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분노를 표출한 이면에 정의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막장' 드라마
19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올해 트위터와 블로그 등 SNS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었다.

박 대통령이 가장 많이 언급된 달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11월(593만915회)이었다.

SNS상 박 대통령 언급은 1∼9월 월평균 57만여회였다가 10월 232만여회로 폭발적으로 뛰어올랐다.

최순실은 올해 6월까지만 해도 월평균 7천여회 언급된 데 그쳤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처음 제기된 7월에는 6만여회 언급됐다.

전달(6천2회)보다 10배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이후 국정농단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10월 359만여회, 11월 357만여회 등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관어 1위는 최순실(201만7천943회), 최순실의 연관어 1위는 박근혜(195만6천915회) 대통령이었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느끼는 지배적 감정은 '분노'다.

박근혜의 연관 감성어로 '분노'는 19만여회 언급돼 '잘못하다'(3만7천399회), '미치다'(5만3천551회), '망하다'(3만6천578회)를 압도했다.

최순실의 연관 감성어로 '분노'는 6만1천145회 언급돼 '미치다'(2만4천536회), '심각하다'(2만4천264회) 등의 3배가량이었다.

박근혜·최순실 연관 감성어로 '막장'도 각각 3만회가량 언급됐다.

◇ 추모·기억·기다림의 세월호
세월호는 참사 2주년인 지난 4월 168만여회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그 외 달에도 30만∼40만회씩 꾸준히 등장하다가 11월 115만여회로 언급량이 다시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최순실의 국정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관련 의혹도 비선 실세와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증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관 감성어로는 '추모'가 10만1천988회로 언급량이 가장 많았다.

이어 '기억하다'(9만1천173회), '기다리다'(5만3천992회), '아픔'(4만9천931회) 등이 뒤따랐다.

'분노'도 3만8천여회 언급됐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사건이 발생한 5월의 언급량이 140만회가량으로 연간 총 언급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월평균 50만회가량씩 SNS상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조현병 환자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범행으로 결론이 났지만 시민들은 '여성혐오' 범죄일 가능성을 떨치지 못했다.

이 사건의 연관어 1위는 '여성혐오'로 24만6천651회 언급됐다.

이어 '차별'(15만8천895회), '남혐'(남성혐오·14만2천776회) 등이었다.

'된장녀', '김치녀', '삼일한' 등 여성혐오를 나타내는 신조어와 함께 남성혐오를 나타내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한국남자는 벌레'라는 뜻의 '한남충'은 '남혐'의 연관어로 4만336회 등장했다.

연관 언급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갓양남'(서양남자 찬양·319회), '재기해'(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것을 조롱하는 말·204회) 등도 나왔다.

◇ "촛불은 국민 분노의 표현 방식"
국정농단에 화가 난 국민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두달째 매 주말 거리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관어 가운데 '촛불'(61만7천849회)은 '탄핵'(87만1천964회), '세월호'(75만3천476회), '퇴진'(71만6천566회), '하야'(66만1천430회) 등과 함께 등장했다.

특히 촛불은 '성주 사드 배치'(4만1천991회), '세월호'(2만4천510회), '백남기'(1만8천418회), '국정교과서'(1만8천244회) 등 현안마다 연관어로 등장했다.

촛불을 든 행동이 국민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국민의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게 됐고, 잘못된 것을 올바로 잡자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올해는 획기적인 해"라고 말했다.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한 지난해와 달리 분노하기 시작한 올해는 훨씬 적극적인 한 해였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헬조선의 현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촛불집회나 탄핵 등으로 분노를 표출했기에 행동을 촉구할 수 있었다"며 "분노는 체념적인 헬조선의 절망과는 차원이 다른 능동적 행동"이라고 진단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노는 긍정적 '열망'의 시작으로, 국민이 분노를 모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며 "1987년에 한국 민주주의의 씨를 뿌린 것이 한 세대인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싹을 틔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wi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