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변이 활발해 백신 개발 어렵고 인체 유해성 우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도살 처분된 가금류의 수가 1천600만 마리를 넘어섰지만 AI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거의 매년 겨울만 되면 반복되는 대량 살처분에 농가에서는 구제역처럼 조류에게도 백신을 도입해 비극적인 살처분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효과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한다.

17일 수의학계 등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력으로 백신 제작은 어렵지 않지만 AI 백신을 사용하면 경제적 측면과 인체에 대한 위해성 면에서 우려할만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백신 제작의 기술적 핵심은 백신 시드(백신 제조용 균주로 순수하게 분리해 배양한 세균)의 확보와 제조 공정이다.

과거 한국에서 유행했던 조류독감 형질의 시드 바이러스는 이미 각 연구기관에 확보됐고, 대부분 1차 실험실 임상 단계까지 마친 상태다.

최근 유행하는 고병원성 H6N6 형의 경우, 시드 확보가 진행 중이다.

이후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우선 실제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에게 백신을 투여하고 반응을 관찰하는 현장 임상실험 단계를 거친다.

육계의 경우 생후 40일 정도, 산란계는 1년에서 2년 정도 걸린다.

임상을 마친 후 수억 마리 분의 백신을 양산하는데 적잖은 비용이 필요하다.

문제는 AI는 변이가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다.

과거 발병한 H5N1형과 H5N8형은 비슷한 유형이지만 혈청 구조 등이 다르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AI 바이러스는 중국 광동과 홍콩에서 넘어온 H5N6형이지만, H5N6형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한국에 오며 저병원성 AI가 재조합돼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최근 유행하는 H5N6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도 다음 해 또 다른 형질의 AI가 발병할 경우 기존의 백신은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물백신'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송창선 건국대학교 수의대 교수는 "가금류에도 오리와 닭이 다르고, 닭에도 육계, 산란계 등 종류가 많으며, AI 변이도 활발해 발병 때마다 맞춤형 백신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만약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백신이 효과가 없을 때 질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아 정부에서 주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인체에 대한 유해 가능성이다.

AI는 구제역과 달리 사람과 가축이 모두 감염될 수 있는 인수 공통전염병이다.

가금류에 백신을 사용하면 AI에 감염돼도 죽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여전히 몸에 남는다.

백신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지만 바이러스 자체를 제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고 안심한 상태에서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과 오리가 식탁에 오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만약 인체에 해로운 형태로 변이가 일어나도 알아챌 수 없다.

겉으로는 멀쩡하기 때문이다.

인력과 비용 문제 때문에 유통되는 모든 가금류를 검역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인필 충북대학교 수의대 교수는 "실제 AI 백신만 10여종을 사용하는 중국에서 AI 사망자가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와 부담 때문에 정부는 백신 사용보다는 살처분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백신을 쓰지 않더라도 백신 개발을 위한 인프라는 구축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송창선 교수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예측이 힘들기 때문에 인체에 치명적인 AI 바이러스가 등장하는 등 언제든지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즉시 비상용 백신(Emergency vaccine)을 생산해 써야 되는데, 지금처럼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백신 사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아예 관심을 끊을 것이 아니라 투자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jhch79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