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금토드라마 ‘도깨비’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
장르 드라마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그 변화가 다채롭다. 수사물(tvn ‘시그널’)을 시작으로 타임 슬립(MBC ‘더블유(W)’), 법정 드라마(tvN ‘굿와이프’), 퓨전 사극(KBS ‘구르미 그린 달빛’, SBS ‘보보경심 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쏟아졌다.

더 빠져든다…'인어'보다 '도깨비'의 러브스토리에
올 연말을 장식하는 드라마 키워드는 ‘판타지’다. ‘태양의 후예’ ‘시크릿 가든’의 김은숙 작가가 쓴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가 쓴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 동시에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푸른 바다…’는 10회 기준 17.5%, ‘도깨비’는 4회 기준 11.4%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인어와 도깨비, 묘하게 닮았네

같은 시기에 방영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의 민담과 설화를 바탕으로 윤회, 환생 등 ‘동양적인 판타지’를 입혔다. 전래설화에 등장하던 도깨비, 조선 중기에 유몽인이 편찬한 설화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가 주인공이다. 죽지 않고 수백년을 살아가야 하는 전설 속 존재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이 큰 줄거리다.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드라마 전개도 똑같다.

드라마 ‘도깨비’의 도깨비 김신(공유 분)은 본래 고려의 용맹한 장수였다.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어린 왕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도깨비로 다시 깨어난다. 그렇게 935년을 살았다. 불멸의 삶을 끝내려면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줄 ‘도깨비 신부’가 필요하다는 설정이다.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푸른 바다…’의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사기꾼 청년 허준재(이민호 분)의 인연은 조선시대로 거슬러간다. 전생에 고을 현령이던 허준재가 인간들의 탐욕에 희생될 뻔한 심청을 구해준다. 인어는 다시 만나자고 한 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육지로 돌아온다.

독특한 상상력을 입다

작가들은 한국의 설화에 독특한 상상력을 입혀낸다. 도깨비 김신은 이름처럼 신적인 존재다. 인간의 간절한 염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 약한 신’이 돼 인간의 죽음까지 좌우한다. 서울에서 캐나다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술에 취하면 “금 나와라, 뚝딱”을 외쳐 금괴를 잔뜩 만들어낸다. 설화 속 도깨비처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허당’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늘 티격태격한다.

더 빠져든다…'인어'보다 '도깨비'의 러브스토리에
드라마 속 인어 심청은 인간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인간을 압도하는 괴력과 식탐을 자랑하는 인어는 무지하지만 순수한 눈빛으로 현대문명과 인간사회를 바라본다. 지독하게 ‘비인간적인’ 인간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인어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휴머니즘적 요소를 드러낸다.

평가 엇갈린 이유는 ‘삶을 바라보는 깊이’

이토록 닮은 두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온라인 분석업체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이 지난 12일 발표한 12월 첫 주 드라마 부문 순위를 보면 ‘도깨비’의 화제성 점유율은 47.6%로 1위였다. 2위인 ‘푸른 바다…’는 14.9%에 머물렀다.

두 작품의 희비를 가른 원인은 ‘삶을 바라보는 깊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은숙 작가는 정이 많고 해학적인 존재로 알려진 도깨비에게 ‘비극성’을 입혔다. 도깨비는 가슴에 박힌 칼 때문에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그에게 영원불멸은 지옥 같은 삶이다.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줄곧 지켜봐야 해서다. 사랑하는 여자가 그의 칼을 뽑아버리면 도깨비는 영원히 죽을 수 있다. 도깨비는 존재론적 회의에 빠진다. 그토록 원하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삶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물 간 관계 설정에도 차이가 있다. ‘푸른 바다…’는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인연과 악연의 관계가 그대로다. 반면 ‘도깨비’에서는 전생과 현생의 인연이 뒤틀리고 바뀐다. 김신을 죽게 한 고려의 어린 왕이 현생에서는 그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는 복선이 곳곳에서 깔려 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이야기 전개도 매력적이다. 도깨비 신부 은탁(김고은 분)을 못살게 군 이모 가족을 벌하기 위해 도깨비가 선택한 것은 ‘금’이다. 금을 던져주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으로 싸우게 된다는 설정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도깨비’에 대해 “사극과 현대극, 동양과 서구의 신화, 전생과 현생,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오가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며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만큼 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