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월권시 법적대응" vs 교육청 "교육감 고유 권한"
학교현장 혼란 우려되지만 일단 교과서 시행시기 연기 유력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의 갈등이 '역사' 과목의 학교 수업 편성권한 문제로 번졌다.

이 영 교육부 차관은 1일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어 "서울, 광주, 전남교육청은 학교에 교과서 선택과 교육과정 편성권한을 돌려주길 당부한다"며 "필요한 경우 시정명령과 특정감사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교육과정운영과 관계자도 "과목 편성은 학교장 재량 권한으로, 교육감들이 나서서 압력을 가해선 안된다고 본다"며 "이 부분에 대해 법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내년도 1학기에 역사 과목을 편성한 서울 19개 중학교 교장과 회의를 연 뒤 보도자료를 배포, "내년 서울의 모든 중학교는 1학년에 역사를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따른 것이다.

앞서 울산, 대구, 경북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 교육감들은 28일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자 강하게 반발하면서 현장에서 적용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는 이에 대한 구체적 후속 조치다.

서울 외에 광주, 전남, 충북 등 타 시도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국정교과서 거부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가 과목 편성이 학교장 재량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23조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조항이다.

교육부가 고시한 교육과정 총론에도 '교과의 이수시기와 수업시수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교육부는 이 법령 조항과 고시 내용을 근거로 교육감들이 일선 학교의 과목 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육감 권한을 벗어난 것인지 관련 법령 등을 참고해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등 정해진 절차대로 과목 편성 철회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이 과정에서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들이 나서 학교장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의 '압력'이자 재량권 침해라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물론 교육청도 지역의 특수성, 교육실태 등을 반영해 교육중점을 설정하고 학교 교육과정 편성 운영 지침을 작성하게는 돼 있다"며 "하지만 현재 각 교육청에서 작성한 교육과정 편성 운영 지침에 '학교 과목 편성표를 보고 수정을 권고한다'든지 그런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수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교육감이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 대해 학교장과 협의한 것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따른 것으로, 교육부가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특정감사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6항에 따르면 교육·학예에 관한 교육감의 관장 사무로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대변인은 "교육감과 교장들은 국정교과서가 현장에 배포되었을 때 혼란이 가중되고 최대 피해가 학생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공감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 가운데 교육과정 재편성 방안에 합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중학교의 경우 지금도 대다수의 학교가 1학년에는 역사 과목을 편성하지 않고 2학년 때부터 배운다.

교육부는 매년 신학기를 앞두고 직전 해 10월께 교과서 주문을 위한 수요조사를 하는데, 지난 10월 조사 결과에서도 전국 3%(90개교)의 중학교만이 1학년에 역사 과목을 편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내년에 역사 과목을 편성하지 않은 나머지 97%의 중학교들은 어차피 내년에는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도 교육감들은 국정교과서가 결국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 하에 일단 시간을 버는 차원에서 90개 중학교에 대해서도 역사 과목 편성을 내년 또는 내후년으로 미루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등학교는 입시 때문에 대다수의 학교가 1학년 때 한국사를 배우기 때문에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사 편성을 2학년 또는 3학년을 미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당장 내년부터 쓰일 교과서를 두고 교육부와 시도 교육감의 격한 충돌로 학교 현장의 혼란 우려도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교과서 자체의 시행 시기가 연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교육부가 이달 23일까지 구체적인 현장 적용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학계, 교육계에서는 교과서 내용에 대한 편향 논란은 차치하고 졸속 집필 탓에 교과서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현실적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교육부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 상황과 '최순실 프레임'에 갇힌 교과서에 대한 반대 여론, 내용 및 기능상 오류 지적 등을 두루 감안해 시행 시기 연기를 위한 교육과정 재고시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