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전·현직 국회의원, 고위관료 금품로비 의혹 '정조준'

최소 5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가로챈 혐의로 공개 수배됐던 엘시티(LCT) 시행사 이영복(66)회장이 잠적 100여 일 만에 검거됐다.

이 회장의 검거로 엘시티를 둘러싼 대규모 정관계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두 가지다.

500억원이 넘는 엘시티 시행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가로채는 데 이 회장이 직접 관여했는지와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다.

올해 3월부터 엘시티 시행사에 대해 광범위한 내사를 벌여온 검찰은 광범위한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회계자료를 분석해 500억원이 넘는 거액이 비자금으로 조성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달 3일 부산시청과 부산도시공사, 해운대구청, 해운대구의회 등 엘시티 인허가 관련 공공기관 4곳을 동시에 압수수색을 하면서 비자금 조성에 맞춰졌던 수사를 엘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불거졌던 비리나 특혜 의혹을 규명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엘시티 수사는 핵심인물인 이 회장의 잠적으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10일 검거됨에 따라 검찰이 이 회장을 둘러싼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을 명백히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먼저 금품 로비 의혹을 받는 곳은 엘시티에 특혜성 인허가를 해 준 부산시청과 해운대구청, 부산도시공사 등이다.

부산시와 해운대구청은 잦은 도시계획변경과 주거시설 허용 등 사업계획 변경, 환경영향평가 면제와 교통영향평가 부실 등으로 이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엘시티 터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하고, 이 회장이 실소유주로 있는 청안건설을 주관사로 하는 컨소시엄을 민간사업자로 선정한 부산도시공사도 검찰 수사를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엘시티 시행사에 1조7천8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해 준 부산은행 등 대주단과 국내외 굴지의 건설사들이 사업성 저하를 이유로 포기한 엘시티에 '책임 준공'을 약속하며 시공사로 나선 포스코건설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에서는 엘시티를 둘러싼 이런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로 부산의 전·현직 국회의원, 부산시청과 해운대구청의 전·현직 고위관료, 엘시티 PF를 주도한 당시 금융권 인사 등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이 회장이 잠적 석 달 여 만에 검거됨에 따라 로비 대상으로 거명됐던 인사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검찰 수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검찰의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이 로비의 귀재이면서도 입이 무겁기로 유명해 '이 회장의 입을 열게 하는 게 검찰 수사의 핵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말 다대·만덕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 때도 사용처가 불분명한 68억원으로 토지용도변경과 아파트 인허가를 쥔 공무원과 이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관계 고위인사에게 로비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에도 이 회장은 달아났다가 2년여 만에 자수했는데, 곧바로 '이씨에게서 부정한 돈을 받은 인사들이 떨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씨는 자신이 처벌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금품 로비 수사 핵심은 금품을 준 사람에게서 "누구누구에게 어떤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얼마의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하는 것인데, 이 회장이 입을 다물어 버리면 검찰 수사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세간에서는 '이 회장이 이번만큼은 혼자 죽지 않는다.

정관계 고위인사를 상대로 한 금품 로비 장부를 공개하겠다'는 말이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이 회장 핵심 측근들은 "이 회장의 전력이나 성품으로 봤을 때 자신이 처벌 되더라도 절대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밖에 이 회장이 국정농단 장본인인 최순실씨와 같은 친목계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엘시티 비리사건이 대형 게이트로 확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osh998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