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물든 청송의 주왕산과 주산지
가을빛 물든 청송의 주왕산과 주산지
경북 청송군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연간 20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왕산국립공원과 주산지 등 빼어난 자연경관이 영화와 TV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덕분이다. 매년 10월 말이면 주왕산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붐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주왕산과 주산지만 둘러보고 다른 도시로 향하기 바빴다. 하룻밤을 묵으려 해도 숙박시설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과를 빼면 청송군에는 먹거리조차 마땅치 않았다. 청송군 곳곳에 각종 고택과 향교 등 문화유산이 있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외지인은 드물었다.

한동수 청송군수는 “당시 사과농사만으로도 지역경제를 유지할 수 있어 공무원과 주민 모두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20년 가까이 인구 2만명대의 ‘교통 오지’로 남아 있었던 탓에 ‘관광 전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연간 200만여명의 관광객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를 얻지 못하고 인근 안동과 영덕 등에 밀려 ‘스쳐 가는 관광지’가 된 게 당시 청송군이 처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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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취임한 한 군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무원 마인드부터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대구시에서 28년간 근무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만난 군 공무원들의 모습은 ‘느슨함’ 그 자체였다”고 털어놨다. 군청 직원의 90% 이상이 청송 지역 출신인 탓에 ‘끼리끼리’ 문화가 팽배했다.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전략도 없이 ‘현상 유지만 하자’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한 군수는 군청 공무원들을 한 달씩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에 ‘유학’ 보내기 시작했다. 6~8급 실무 주무관들을 2인 1조로 파견을 보내 우수 사례를 배우도록 했다. 이른바 ‘배낭 연수 프로젝트’였다. 유학 기간엔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해 오로지 벤치마킹에만 전념하게 했다.

매년 4~5개 팀이 배낭 연수를 다녀왔다.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 사이에서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청송군 맛집 만들기’라는 아이디어가 ‘유학파’ 공무원의 머리에서 나왔다. 다른 지역에서 역사·자연유산 못지않게 지역 맛집이 지역경제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낸 아이디어였다. 당시 닭백숙을 제외하면 청송을 대표하는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다.

해당 직원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반영됐다. 청송군은 2010년부터 요식업 전문가를 초청해 지역 특성을 살린 요리를 하는 음식점에 무료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조리법부터 서비스,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매년 50명의 지역 내 요리사를 대상으로 ‘향토음식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음식들이 사과 김치, 사과 닭가슴살 냉채, 다슬기 덮밥 등이다. 지금은 청송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관광객을 대하는 군 공무원과 주민들의 무뚝뚝한 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도 유학파 직원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청송군은 2008년부터 전문 친절교육 강사를 초청해 매년 군청 공무원에게 친절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반음식점과 숙박업소 등 관광객이 자주 찾는 업소를 방문해 청결·친절 교육에 나섰다.

청송군은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들을 벤치마킹해 도시 경관을 꾸미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이후 청송군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지붕과 벽의 색이 일정하다. 지붕은 소나무껍질색(진갈색), 벽은 연한 흙색(연갈색)이다. 청송군이 2009년 군 단위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제정한 도시경관조례와 색채기본계획 덕분이다. 하얀 외벽과 코발트블루 지붕으로 유명한 그리스 산토리니 등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게 청송군의 계획이다. 한 군수는 “주어진 자연에만 의존해선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될 수 없다”며 “청송만의 콘텐츠를 입히는 등 관광의 질을 높여 청송을 세계적인 힐링도시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송=황정환/오경묵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