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총궐기 앞두고 진보진영 자극 피할 듯…조건없는 영장 재신청 가능성

경찰이 23일 고 백남기씨 시신의 부검 영장 집행을 시도했다가 유족 반대로 철수하면서 향후 영장 집행이 어떻게 될지 관심을 모은다.

현재 경찰이 발부받은 부검영장(압수수색검증영장)은 25일이 만료일이어서 집행을 위한 시한은 이틀 남은 상태이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법원에서 유족과 협의하라는 취지로 '압수수색 검증의 방법과 절차에 관한 제한'이란 조건을 내건 부검영장을 발부받은 이후 6차례에 걸쳐 부검을 위한 협의요청 공문을 보냈다.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부검을 전제로 한 협의에는 응할 수 없다'며 매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영장 집행 시도에 나선 이날 경찰은 장례식장 주변에 경비병력 800명을 배치했지만, 물리력을 동원해 백씨 시신을 확보하려 하지는 않았다.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현장에서 "유족이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히면 오늘 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유족 의사를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이날 서울대병원으로 향한 것이 실제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공권력 집행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집행의지를 보여주려는 액션이 아니었느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이 영장까지 발부받은 상태에서 투쟁본부 등의 반대로 이를 집행하지 않는다면 '무기력한 공권력'이라는 비판을 피할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이달 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25일 전에 (부검 영장이) 집행될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유족과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집행 시도조차 없으면 당장 경찰이 무능하다는 질타를 받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부검했을 때 법원이 영장에 기재된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며 그 결과의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집행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더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에는 경찰의 강제집행에 대비하겠다며 300∼400명의 '시민지킴이'가 모여 있다.

경찰이 한 차례 집행을 시도한 만큼 위기감을 느낀 진보진영이 서울대병원으로 더 몰려들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이 물리력으로 시신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강제집행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경찰에 연행되는 사람이 나오면 사태가 더 커질 수 있다.

민주노총 등이 백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 약 1년만인 다음 달 12일 '2016년 민중총궐기' 집회를 예고해둔 상황에서 경찰이 진보진영을 자극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과 종로경찰서 등 경찰 관계자는 남은 영장 시한 이틀 동안 집행 시도가 또 있을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 없고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24∼25일에도 영장의 강제집행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게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만약 영장이 시한인 25일까지 집행되지 않으면 경찰이 기존 영장을 반환하면서 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6차에 걸쳐 협의를 요청했으나 유족이 계속 거부 의사를 밝혔고 영장 집행도 한 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유족의 반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건·제한'이 없거나 유효기간을 장기간으로 하는 영장 발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백남기 투쟁본부가 "유족이 거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같은 내용으로 부검 영장을 6차례나 발송하는 것은 '언론플레이'"라고 경찰을 비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