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리포트] '갑질 대물림'이 문제…을이 갑 견제할 수 있는 통로 마련해야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갑질’이 심하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직장, 가정, 식당 등 사회 곳곳에서 갑질은 일상이 됐다. 갑질의 주체도 지도층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한국 사회가 ‘갑질병’에 감염된 이유는 복합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 특유의 서열 문화가 1차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이나 직급으로 서열이 정해지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존중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아랫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 역시 정당화했다”며 “아랫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갑질을 대물림하면서 갑질이 고착화됐다”고 분석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억압의 낙수 효과’로 설명한다. 전 교수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갑질을 많이 할수록 사회 전체에 갑질이 만연해진다”며 “억눌린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조그만 권력과 자산을 통해 위에서 받은 억압과 설움을 자기보다 더 아랫사람에게 풀어버린다”고 설명했다.

반칙을 권장하는 무한경쟁 사회도 한몫한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고 이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걸 사회적으로 교육받는다”며 “그런 의식과 행태가 부끄러움으로 걸러지지 않고 갑질로 표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사회의 갑질병을 치유하기 위해선 사회적인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안 교수는 갑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초·중·고 교육 방향을 다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기면 장땡이라는 식의 경쟁에 아이들을 내몰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사회의식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부터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현재의 초·중등 교육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을의 반란’도 필요하다. 곽 교수는 “갑질을 당했을 때 반항하는 것보다 순응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을들의 책임도 있다”며 “을들은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갑질에는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갑질의 심화와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전 교수도 “사회적으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은 권리만 누리고 의무와 책임은 다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각종 책임에 짓눌려 숨가빠한다”며 “권력이나 부를 갖지 못한 ‘을’이 ‘갑’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통로를 더 마련해 억울한 일을 당한 ‘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마지혜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