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시 이야기-경남 진주 (상)] '범LG가의 모태'이자 국내 대표 기업인 다수 배출…'인재의 산실' 진주
경남 진주는 ‘봉황(鳳凰)의 도시’다. 진주의 주산(主山)인 비봉산(해발 138m)의 옛 이름은 ‘큰 봉황이 사는 산’이라는 뜻의 대봉산(大鳳山)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봉황의 모습을 닮았다고 알려진 진주는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남강과 비봉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진주에 본관을 둔 대표 성씨인 강, 하, 정씨 문중에서 봉황의 기(氣)를 받아 예부터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도시 이야기-경남 진주 (상)] '범LG가의 모태'이자 국내 대표 기업인 다수 배출…'인재의 산실' 진주
설화에 따르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무학대사는 진주 강씨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대봉산의 봉암(鳳巖)을 깨뜨려 봉황을 날아가게 했고 이름도 비봉(飛鳳)산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이후 진주에선 한동안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위기를 느낀 강씨 일족은 날아간 봉황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남강변에 대나무와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오동나무에 둥지를 튼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남강변 곳곳에 대나무와 오동나무가 심어져 있다.

진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진주성과 촉석루다. 사적 제118호인 진주성은 1592년 임진왜란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여명의 군사로 왜적 3만여명을 물리친 임진왜란 3대 격전지(한산도대첩·행주대첩·진주대첩) 중 하나다. 이듬해인 1592년엔 왜적 10만여명을 맞아 7만여명의 민·관군이 모두 순절한 호국성지다. 진주성 안에 있는 촉석루는 남강 벼랑 위에 있는 누각이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던 왜장을 의기(義妓) 논개가 끌어안고 투신했다.

진주는 김시민 장군과 논개로 대표되는 충절의 도시인 동시에 전통적인 교육도시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경북 안동과 함께 영남 사림(士林)의 본거지였다. 조선시대에 배출한 정승(영의정·우의정·좌의정)만 11명에 이른다.

지금도 이런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진주의 초등학교는 42곳, 중·고등학교는 43곳, 대학은 7곳으로 유치원을 제외한 학교 수가 92개다. 인구가 35만여명인 도시에 학교가 90여개에 달하는 곳은 진주가 유일하다. 진주고가 대표적인 명문으로 꼽힌다. 지금은 평준화되면서 과거 명성이 일부 퇴색했지만 1980년대 중반엔 한 해 200여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킬 정도였다. 2006년 고위공무원단 제도 출범 당시 조사에 따르면 고위공무원(1~2급)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진주고였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끈 많은 기업인도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진주는 범LG가(家) 기업인의 고향이다. 진주 도심에서 동쪽으로 30㎞가량 떨어진 지수면 승산마을은 LG와 GS그룹의 전신인 럭키금성그룹을 세운 구씨와 허씨의 집성촌이다.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1931년 진주에서 자본금 3800원으로 LG그룹 모태인 구인회 상점을 열었다. 능성 구씨 집안의 6형제 중 장남인 구 창업주는 1920년 김해 허(許)씨 집안의 장녀 허을수 씨와 결혼하면서 훗날 LG그룹을 탄생시킨 구씨와 허씨 집안 간 동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허씨 집안은 당시 경남 일대에서 알아주는 만석꾼 거부였다. 구한말에 허씨 가문의 부를 일궈 낸 만석꾼 허준과 그의 아들 허만정(허창수 GS그룹 회장의 할아버지)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인물들이다.

창업주를 비롯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LG그룹의 역대 회장 모두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5년 LG그룹과 분리된 GS그룹의 허창수 회장(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승조 전 GS리테일 부회장 등도 진주 출신이다. 2003년 LG에서 독립한 LS그룹의 고(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범LG가 외에도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과 그의 아들인 강호찬 넥센타이어 사장, 하진홍 전 진로 사장, 김진태 전 검찰총장, 조경규 환경부 장관, 진주를 지역구로 둔 박대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 김성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서울 강서을) 등도 진주가 낳은 인재다.

진주=강경민/김해연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