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손실 피해자들 소송…대법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 원칙에 위배"

비리를 저지른 경영진과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투자자들의 손실에 똑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분식회계와 횡령 등으로 손실이 커졌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양측 책임을 같게 인정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1일 제일저축은행 투자 피해자 정모(62)씨와 김모(58)씨가 신한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투자 손해액의 50%를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계감사를 부실하게 해 분식 행위를 밝히지 못한 과실 책임과 횡령·부실대출 등의 범죄 행위를 저지른 고의 책임은 그 발생 근거 및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부실감사 이후 지속해서 이뤄진 경영진의 범죄 행위가 손해를 확대했을 개연성을 배제할수 없는데도 회계법인이 그 부분 손해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라는 이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 판시와 같이 회계법인의 책임제한액을 경영진과 동일하게 50%로 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2011년 4∼9월 제일저축은행 주식을 구입한 정씨 등은 한국거래소가 2011년 10월 분식회계 및 횡령 등 경영진 범죄를 이유로 제일저축을 상장 폐지하자 유동천(76) 회장 등 은행 임직원과 감사인 신한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씨와 김씨는 각각 9천418만원과 7천373만원 어치의 주식을 샀다.

이들은 허위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믿고 주식을 샀다고 주장했다.

법원에 따르면 제일저축 임직원은 2009∼2010년 자본잠식 상태인 회사가 흑자인 것처럼 재무제표를 꾸몄다.

회계법인도 재무제표가 적정하다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다.

유 회장은 2011년 10월 분식회계와 회삿돈 158억원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돼 2013년 징역 8년이 확정됐다.

재판 쟁점은 부실감사 회계법인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였다.

1, 2심은 "정씨 등이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에만 의존해 투자 판단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 회장과 회계법인의 책임을 똑같이 투자손실의 50%로 인정해 연대책임을 지도록 했다.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도 제일저축은행 투자 피해자 정모(46)씨가 신한회계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투자손실의 60%를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회계감사 후에 이뤄진 유씨 등의 거액 횡령과 부실대출 등의 범죄가 손해의 발생 내지 확대에 기여했다면 그 부분 손해는 피고와 무관한 것"이라며 "이에 책임을 지운 것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