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더딘 수사에 뒷북 계좌정지…판치는 '인터넷 중고 사기'
“A모델 자전거 140만원에 드리겠습니다. 어디 사세요?”(중고나라 판매자)

“서울입니다. 다른 중고가보다 30%나 싸네요.”(구매자 양모씨)

“급매라서요. 근데 강원도라 직거래는 어렵겠네요. 안전하게 택배로 보내드릴게요.”(판매자)

“거래금이 커서 좀 불안한데요.”(양씨)

“걱정 마세요. 자전거 실사(실제 사진)에 주행 동영상까지 보내드릴게요. 제 얼굴도 다 나옵니다.”(판매자)

지난달 양씨(30)는 판매자가 알려주는 계좌로 140만원을 송금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판매자는 이후 연락이 닿질 않았다. 그는 “동영상이 판매자 신상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여서 안심했는데 알고 보니 함정이었다”며 “사기꾼이 실제 판매자에게서 받은 동영상을 그대로 써먹은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이 같은 중고거래 사기 사건이 넘쳐나고 있다. 경찰이 대응을 강화하고 있지만 피해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인터넷 직거래 사기 건수는 올해 8월까지 5만1822건 발생했다. 올 한 해 처음으로 8만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4만5877건, 2015년 6만7861건에 이어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철없는 10대들 “재범률 높아”

경찰은 인터넷 상거래 질서를 흐리는 사기꾼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전국의 사이버 수사인력 1120여명을 투입해 ‘사이버 법질서 침해 범죄’ 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에는 서울지방경찰청 부산지방경찰청 경기남부지방청 등의 사이버범죄 수사대 조직을 두 배로 늘렸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인터넷 직거래 검거율을 2014년 73%에서 올해 90.8%로 대폭 끌어올렸다.

하지만 중고거래 사기는 뿌리 뽑힐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사기건수는 경찰 통계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상 빈번하게 벌어지는 10만원 안팎의 소액 피해에 대해선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철 없는 10대, 20대를 중심으로 집단적이면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이모씨(23)와 조모씨(24)는 네이버 ‘초캠장터’ 카페에서 캠핑장 이용권을 구매하겠다고 39명을 속여 1185만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됐다. 올해 2월 대구에 사는 중학생 김모군(15)은 중고나라에 ‘빅뱅 콘서트 막콘(마지막 콘서트) 스탠딩 B구역 2연석 양도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뒤 9명을 속여 280만원을 가로챘다.

10대 청소년 범죄자가 유독 많다. 경찰은 인터넷 직거래 사기 피의자 4명 중 1명은 10대 청소년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청소년 사이에선 ‘중고나라론(loan)’이란 단어가 유행할 정도다. 중고나라에서 물품을 판다고 하고 돈을 받은 뒤 불법 사설 도박업체에 베팅했다가 돈을 잃으면 잠적하고, 따면 물품값을 갚는다는 의미에서 ‘중고나라’에 ‘론’(대출)이 붙었다.

한 일선 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피의자 절반 이상은 동종전과가 없는 초범으로 특히 10대가 많다”며 “사기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범죄지만 청소년이나 초범들은 기소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재범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수사 허점 노리는 사기범들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파악해 중고거래 사기에 활용하는 일도 늘었다. 와싸다닷컴 하이파이클럽 등 오디오 판매 전문사이트들은 회원 공지사항을 통해 “직원을 사칭,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묻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회사에서 개인정보를 요청하는 일은 없다”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고가 오디오를 중고로 자주 거래하는 회원 아이디를 도용해 사기를 치는 수법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조직적인 지능 범죄도 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1월 가짜 안전결제사이트를 이용해 노트북 카메라 등 중고물품 거래로 706명에게서 4억3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상습사기)로 조모씨(26) 등 2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들은 겉모습과 결제 방식이 동일하고 웹사이트주소(URL)가 미세하게 다른 가짜 안전결제사이트를 350만원에 구매해 범행에 이용했다.

해외에서 범행을 저질러 인터넷주소(IP) 추적을 피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직거래 사기 피의자 가운데 연령대를 알 수 없는 ‘불상’ 비율은 2014년 10.8%에서 올해 15.4%로 높아졌다. 피의자 6명 중 1명은 경찰이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잡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경찰이 피해 접수 이후 사기 여부를 결정하는 데 1주일가량 걸리고, 소액 사건이 많아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로 판명돼 계좌 지급정지를 하더라도 사기범들이 피해금 전액을 인출한 후여서 구조적으로 ‘뒷북’ 수사가 되는 사례가 많다”며 “사기범들은 신고만으로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인터넷 직거래는 계좌 지급정지 요건도 까다롭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