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음식 찾고, 밤낮없이 졸립다는 남편…혹시 '가을 우울증'?
가을이 되면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다. 기온이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한 해가 끝난다는 기분에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기분 탓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호르몬 변화로 생긴 우울증일 가능성도 있다.

기온과 일조량이 바뀌면 뇌의 생물학적 시계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호르몬 균형이 깨져 기분에도 영향을 준다. 가을과 겨울, 밤이 길고 일조량이 줄면서 생기는 우울증을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일반 우울증은 입맛이 떨어지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지만 계절성 우울증은 식욕과 잠이 늘어나는 특징이 있다.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 예방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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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음식 찾고, 밤낮없이 졸립다는 남편…혹시 '가을 우울증'?
호르몬 영향으로 남성 우울감 커져

우울증은 슬프거나 울적한 느낌이 기분의 문제를 넘어 신체와 생각 등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증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개인의 활동이나 사회생활에도 문제가 생긴다. 우울증은 슬프고 우울한 기분,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불면, 식욕 감퇴, 피곤함, 성욕 감퇴, 의욕 저하 등이 특징이다. 자살자의 80%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만큼 우울증과 자살은 연관관계가 깊다.

가을철 우울증은 햇빛의 양이 부족해지면서 생긴다. 멜라토닌 호르몬과 깊은 연관이 있다. 뇌 중앙에 있는 작은 내분비선인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은 수면주기를 조절한다. 밤에 많이 생성되고 낮에 덜 생성된다. 멜라토닌이 늘면 에너지 부족, 활동량 저하, 슬픔, 과식, 과수면 등의 생화학적 반응이 나타난다.

비타민D와도 연관이 있다.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돼 뇌 속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심리적 안정과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한다. 일조량이 줄면 비타민D 합성이 줄고 세로토닌 활성도가 낮아져 우울증이 생기기 쉽다. 비타민D 합성이 줄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줄어든다. 가을에 유독 남성들이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이유다.

뇌의 한 부분인 시상하부는 인체가 외부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건강한 사람은 햇빛의 양이 부족해져도 호르몬 조절을 해 문제없이 지낸다. 하지만 계절성 우울증 환자는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호르몬 변화가 커질 수 있다. 가을과 겨울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눈과 시상하부 사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 명 중 한 명, 일생에 한 번 이상 경험

우울증은 유전이나 심리적인 요인, 대인관계나 경제적인 원인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가족 중 우울증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 빈도가 세 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 경제적 파산 등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원인 등으로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우울증은 사회 분위기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함병주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높은 청년실업률, 세계적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최악’과 ‘포기’라는 말이 쉽게 유행할 만큼 사회 전반에 비관적인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 같은 사회 분위기는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마음이 약해 생기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오해 때문에 우울증이 있어도 치료를 미루는 사람이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편견 때문에 선뜻 치료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미국 여성 5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우울증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우울증은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5~10%는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

의욕상실에 죽음 떠올리면 의심해야

우울증 증상은 다양하다. 대표 증상은 우울 불안 공허감 절망감 등이 지속되는 것이다. 죄책감 무력감 의욕상실 등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면 의심해야 한다.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줄거나 반대로 폭식과 급격한 체중 증가를 보일 때도 의심할 수 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피로를 느끼는 것도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소화불량, 만성통증 등 신체 증상이 나타나거나 망상, 환각, 집중력 저하, 기억력 저하 등이 함께 발생할 수도 있다. 우울증으로 술에 의존한다든지 게임에 빠지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가을과 겨울에 나타나는 계절성 우울증은 많이 먹고 단 음식과 당분을 찾는 특징을 보인다. 몸이 늘어지는 기분을 호소하기도 한다.

우울증 증상이 있으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 취미생활을 통해 즐거움을 찾거나 사회적 활동을 통해 대인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좋다. 힘든 일이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와 자주 상의해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주 3회 이상 운동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도한 음주, 흡연은 자제하고 습관성 약물 복용과 낮잠도 피하는 것이 좋다. 가을철 우울증은 매일 일정시간 햇볕을 쬐는 것으로도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이런 생활습관을 유지해도 의욕 저하와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김수인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 상담 치료, 광선 치료 등 기타 치료로 나뉜다. 상담 치료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바로잡아주는 인지행동 치료가 일반적이다. 매일 일정시간 강한 광선을 쐬는 광선요법도 도움이 된다. 약물 치료는 적어도 2주 이상 해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5~6개월을 유지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약을 임의로 끊어서는 안 된다.

우울증 환자를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 후 병가를 신청한 한국 직장인은 31%에 불과했고 기간은 9.8일에 그쳤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는 51%가 병가를 신청했고 기간은 35.9일이었다. 홍 교수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직무수행이 힘들면 눈치 보지 않고 병가를 내거나 결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도움말=함병주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수인 이대목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