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화시장 상인들 망연자실…"인근 산자락 혁신도시 조성이 피해 키웠다"

"태화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했는데 이런 물난리 처음입니다.

다 물에 잠겼는데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

제18호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이튿날인 6일 오전 울산 중구 태화종합시장에는 상인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나와 있었다.

시장 골목마다 물에 젖은 채소, 가재도구부터 냉장고까지 쓰레기와 섞여 쌓였다.

상인은 급한 마음에 건질 만한 물건이 있는지 가게 곳곳을 살폈다.

폭우가 쏟아진 5일은 마침 장날이라서 피해가 더 컸다.

1980년대 태화시장이 조성됐을 때부터 장사했다는 한 80대 상인은 "장날이라서 물건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다 물에 잠겼다"며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들은 폭우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9년째 옷가게를 운영한 이모(53·여)씨는 "불과 1∼2분 사이에 물이 무릎까지 차서 돌아볼 새도 없이 대피했다"며 "겨울 내의까지 들여놨는데 3천만 원 정도는 피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맞은 편 쌀집 주인은 장날 전날 들여놓은 쌀을 조금이라도 건져내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가 거센 물살이 문을 막으면서 갇혔다.

결국, 다른 주민이 유리문을 깨 겨우 탈출했다.

방앗간의 고추 분쇄기와 떡 찌는 기계는 물이 스며들어 모두 멈췄다.

방앗간 주인은 "장비를 고치는 데만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릴 것 같다"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은 "오전 10시 정도부터 갑자기 물이 들어오면서 금방 사람 가슴까지 찼다"며 "가게마다 최소 수천만 원은 피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위치상 함월산 아래 자리 잡은 태화시장은 저지대여서 피해가 집중됐다.

시간당 평균 104㎜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말 그대로 홍수가 났다.

상인들은 태화시장 위쪽에 최근 조성된 혁신도시가 피해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저지대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 정도 물난리는 없었다"며 "산을 깎아 만든 혁신도시 영향이 없을 리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전에는 각종 나무와 풀이 비 피해를 막아줬지만, 산자락에 공공기관과 대단지 아파트, 도로가 깔리면서 빗물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울산혁신도시에는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6개의 우수 저류시설이 있으며, 태화시장으로 연결되는 유곡로 바로 위 함월고등학교 옆에 이 중 1개(용량 471만8천000ℓ)가 있으나 이번 폭우 당시 용량을 넘어 빗물이 인근 하천으로 흘렀다.

혁신도시 조성 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순식간에 워낙 많은 비가 내려서 산 위에서부터 많은 양의 빗물이 흘러내렸다"며 "우수저장용량에 직접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cant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