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비리 배후 규명 요원…총수일가 비자금 의혹도 미궁 속으로
사실상 수사 동력 상실…'먼지털기식 무리한 수사' 비판 가능성도

롯데그룹 비리의 정점으로 지목된 신동빈(61) 회장의 구속영장이 29일 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검찰 수사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그룹 총수를 구속해 올 6월부터 3개월 넘게 매달려온 수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검찰의 복안도 빛이 바랬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법원 판단에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1천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범죄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아버지인 신격호(94) 총괄회장이 그룹 경영의 실권을 갖고 있었던 만큼 자신에게 비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신 회장의 소명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셈이다.

검찰 측은 "수사를 통해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됐고 총수 일가가 가로챈 이익이 1천280억여원에 달할 정도로 사안이 중대함에도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신 회장 구속영장 청구는 소환 조사 후 엿새 만에 이뤄졌다.

국가 경제 등 수사 외적인 부분과 영장기각 가능성까지 포함해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나름대로 수사 결과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검찰은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주력부대인 특수4부의 조재빈 부장을 비롯해 수사검사 4명을 동원하는 등 배수진을 쳤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과거 경영비리에 연루된 재벌 총수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근래 들어선 2013년 횡령 및 법인세 포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조석래(81) 효성그룹 회장 정도가 언급된다.

조 회장은 영장기각 후 불구속 기소됐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은 작아 신 회장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종착역을 향해 가는 검찰 수사가 영장기각으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검찰이 신 회장을 배후로 의심하는 롯데케미칼의 270억원대 소송 사기와 200억원대 통행세 비자금 의혹도 미완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롯데홈쇼핑의 9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 규명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롯데홈쇼핑 수사는 7월 강현구 사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동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검찰은 신 회장을 구속한 뒤 강 사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다시 수사에 시동을 건다는 복안이었으나 현 상태에선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수사의 최대 현안인 총수 일가 비자금 부분도 규명되지 못한 채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검찰은 애초 핵심 수사 목표로 '비자금 규명'을 내세웠지만, 성과는 좋지 않다.

그나마 롯데건설에서 300억원대 비자금 '저수지'를 찾아냈으나 총수 일가는 물론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와의 관련성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신 회장의 영장 범죄사실에도 비자금 부분은 빠졌다.

그룹 2인자였던 이인원 정책본부장이 소환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신 회장의 신병 확보가 비자금 규모와 용처 파악의 '필요조건'으로 꼽혔지만, 답을 찾기 요원한 상황이 됐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 수사도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사안은 이명박 정부 유력 인사들의 금품 비리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핫이슈'였다.

실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로 인허가 업무를 주도한 장경작(73) 전 호텔롯데 총괄사장을 7월 출국금지하는 등 수사 의지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첫 단계인 비자금 수사가 지지부진한 데다 정관계 로비 수사로 넘어갈 핵심 연결고리로 꼽힌 신 회장의 신병 확보에 실패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영장기각을 계기로 '무리한 수사', '먼지털기식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 안팎에선 검찰이 계열사 전반을 훑으며 '곁가지 수사'를 한다는 비판과 그룹 임직원들이 장기간 수사에 시달려 경영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다.

영장 청구 전후로는 국가 경제와 재계 5위 대기업의 경영권 향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었다.

검찰로선 영장이 기각돼 수사 차질과 함께 호의적이지 않은 외부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수사 강도를 높여 지속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 주께 신 회장을 비롯해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총수 일가를 일괄해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종결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