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층 건물보다 구조 안전성 뛰어나지만 흔들림 더해
고층건물 대피 요령 마련하고 내외장재도 내진설계 필요

경북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여진이 반복되고 있지만 고층 건물에 대한 지진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고층 건물은 일반 건물보다 더욱 엄격한 내진 설계 기준을 적용해 구조 안정성은 뛰어나지만, 유리나 타일 등 외장재 붕괴에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2010년 753개에서 2015년 1천478개로 5년 만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부산 307개, 경기 302개, 서울 269개, 인천 247개 등 순이다.

고층 건물 대부분은 규모 6.0∼6.5의 강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구조 안전성 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수준을 유지한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는 규모 9의 지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부산 위브더제니스(80층)·해운대아이파크(72층), 인천 송도더샵퍼스트월드(64층) 등 초고층 아파트들도 내진 1등급 설계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규모 6.0 이상 강진의 진앙이 건물 지하주차장 아래 땅속이 아니라면 건물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미다.

고층 건물은 아울러 저층 건물보다 지진에 더 잘 견디는 속성이 있다.

건물의 구조는 지진파의 주기(週期), 즉 흔들리는 시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저층은 짧은 시간 여러 번 흔들리면서 구조에 영향을 받지만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주기가 길어진다.

지진이 발생해 밑에서 흔들어도 고층에서는 그 폭이 크기는 하지만 천천히 흔들려 구조에 영향을 덜 미치게 된다.

12일 경주 지진 발생 때도 부산의 고층 건물은 별 피해가 없었지만 1∼3층 저층 건물에서는 벽에 균열이 가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부산대 건설융합학부 오상훈 교수는 "고층 건물이 저층보다 지진에 더 잘 견딘다"며 "외국 지진피해 사례를 봐도 3층 이하 건물의 피해가 9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층 건물은 구조 안전성은 뛰어나지만 건물 외벽 타일, 마감재, 유리, 커튼월 등 비구조재는 지진에 더 취약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흔들리는 폭이 크다 보니 건물을 장식하는 유리 벽이나 외벽 마감재 낙하, 승강기 고장 등의 2차 피해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비구조재 안전을 확보할 내진 지표 등 관련 법령이나 안전 기준은 없다.

현행 건축법상 지진 등 기타 진동과 충격에 대한 안전 확보 의무는 구조재에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건물 자체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구조체의 내진 설계는 물론 비구조재의 내진 설계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오 교수는 "같은 조건에서 10층짜리 아파트 10층이 좌우로 1cm 흔들리면 50층짜리 50층은 6∼7cm까지 흔들린다"며 "고층 건물의 높은 층일수록 2차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비구조재의 중요성을 인식, 5월 '정부 합동 지진방재종합개선대책'을 발표하면서 '비구조재 내진 설계 기준 도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고층 건물 지진 대피 요령'이 별도로 마련돼 있는 것이 없어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의 '지진 발생 시 국민행동요령'에는 10가지 상황을 가정해 행동요령이 나와 있지만 고층 건물에서는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진 발생 땐 엘리베이터 이용을 피해야 한다고 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비상계단을 이용해 1층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고층 건물 주민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인 남성이 50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뛰어 내려가더라도 10분 정도는 걸리기 마련이다.

고층 아파트 주민으로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 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안전처 대피요령 매뉴얼에도 고층 건물 지진 대피요령이 따로 있진 않다"며 "지진 발생 때 큰 진동이 멈추면 여진 발생에 대비해 건물 밖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요령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