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주민 "대피방법 모르는 게 아니라 안전한 공간 없어"
지진 때 운동장 개방 않는 학교도…대피소 유명무실 지적


"마당에 대피했다가 집에 들어가기를 반복할 뿐입니다.지진 대피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대피할 곳이 없습니다."

21일 발생한 규모 3.5 여진 진앙과 가까운 경주시 내남면 덕천 1리 이근열(64) 이장은 지진 대피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쉬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여진으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몹시 불안하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경주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을 계기로 지진 대피소와 재난 시 임시 주거시설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도내 23개 시·군에 지진 대피소로 지정된 곳은 모두 745개.
운동장이 528개로 가장 많고 공원 72개, 교회나 복지시설 등 기타 145개 등이다.

지진 발생 때 임시 주거시설로는 학교 604곳, 마을회관 405곳, 경로당 224곳, 관공서 60곳, 기타 153곳 등 모두 1천446곳이 지정돼 있다.

이런 시설이 시·군 읍면동 단위로 정해져 있지만 지진 대피소나 임시 주거시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경주 내남면 한 주민은 "지진 대피소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대피소가 있다고 해도 집보다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데 누가 믿고 대피소에 생명을 의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피소 81%가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야외 공간이다 보니 날씨가 추운 겨울이나 지진으로 유해물질 누출 등이 있으면 일정 기간 안전하게 대피할 장소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경주에는 월성 1∼4호기, 신월성 1∼2호기 등 원전 6기가 있다.

원전뿐만 아니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도 있다.

이렇다 보니 두 차례 강진에 이은 여진이 계속되면서 주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덕천1리 이근열 이장은 "마을 공동 공간이라고 해야 마을회관 정도인데 그마저 지난해 진단 결과 위험 판정을 받아 안전한 대피장소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2일 규모 5.8 강진 당시 부산 일부 학교에서는 운동장 문을 개방하지 않아 주민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지진 대피소에 든 학교 등 당직근무 매뉴얼에 지진이 났을 때 운동장 문을 개방하라는 내용이 없어 발생한 상황이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김모(43·여)씨는 "일본은 지진 대비 조치를 충분히 한 학교가 대피소 겸 유사시 거점 역할을 하며 임시 거주와 연락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고 들었다"며 "지진이 나면 큰 건물을 피해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으로 달려가지만 우리나라는 별로 안도감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주연합뉴스) 류성무 이승형 기자 tjdan@yna.co.kr, har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