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 15년…관광수입 늘었지만 외국인 범죄로 사회불안 커져
도민 안전 위기감 팽배…"폐지" vs "보완" 논의 활발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며 무사증 입국제도를 도입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지 15년이 됐다.

이 제도를 통해 최근 4년간 226만명 이상이 제주를 찾았고, 그들이 쓰고 간 외화는 관광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가진 제주에 도움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고,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건도 느는 법. 그동안 제주를 찾은 외국인들이 저지른 범죄도 함께 증가해 도둑과 거지, 대문이 없다는 삼무(三無)의 섬 제주의 '안전' 이미지는 수년 새 일그러져버렸다.

이런 와중에 17일 오전 제주시 연동의 한 성당에서는 기도하던 김모(61·여)씨가 무사증 제도를 이용해 입국한 중국 관광객 첸모(50)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일 발생한 중국인 관광객 8명에 의한 식당 여주인과 손님에 대한 집단폭행 사건에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첸씨의 상식을 뛰어넘는 범행은 도민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전국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두 사건은 일부 중국인 관광객들의 불법·범법 행태에 대한 불만을 참아오던 도민들의 인내심을 한계에까지 끌어올렸다.

◇ "외국 관광객 증가 일등공신" vs "외국인 범죄 증가 요인"
우리 정부는 1998년 4월 15일부터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한해 제주도 무사증 입국을 허용해왔다.

하지만 한중 양국 간 협정을 통하지 않은 일방적 제도인 데다 중국 내에서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터라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2002년 4월 1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발효하며 테러지원국 등으로 지정된 11개국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이 사증 없이 제주도에서 30일간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됐다.

목적은 하나였다.

외국인 관광 활성화였다.

그해 9월 4일 중국 정부가 제주를 방문하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에 대해 무사증 출국을 허용했고, 같은달 12일 중국 관광객 53명이 처음으로 사증 없이 제주도를 찾았다.

특별법이 시행되고 6년간은 도지사 또는 관광협회가 초청하는 5인 이상 단체관광객만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2008년 초청확인서 제도가 폐지되면서 개별 중국인 관광객도 사증을 발급받지 않고도 제주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9월 12일 중국 단체관광객 53명이 무사증 입국제도를 처음으로 이용한 이후 2008년까지는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소폭 점증하는 시기였다.

2008년 개별 중국 관광객의 무사증 입국이 가능해진 데다 한류 열풍 등이 더해져 2009년을 기점으로 중국 관광객의 무사증 입국이 급증세를 탔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6년 1만793명이었던 제주 무사증 입국자는 2007년 1만9천317명, 2008년 2만3천354명, 2009년 6만9천569명, 2010년 10만8천679명, 2011년 15만3천862명, 2012년 23만2천929명, 2013년 42만9천232명, 2014년 65만5천301명,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여파로 다소 입국이 주춤했던 2015년도 62만9천724명으로 10년 만에 58배 정도 늘었다.

지난해 전체 무사증 입국자 가운데 중국인은 62만3천521명(99.0%)으로 제주도 무비자 입국자는 거의 중국인이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무비자 입국자 54만8천205명 가운데 54만4천775명(99.4%)가 중국인으로 나타났다.

올해 말엔 무사증 입국자 수가 8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사증 입국제도는 그러나 제주도 내 외국인 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도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도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등록외국인과 무사증 입국 불법체류자도 늘면서 도내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범죄는 급격히 증가했다.

유관 기관들은 등록외국인과 불법체류자 수에 체류 외국인 관광객 수를 더해 적게는 3만5천명에서 많게는 5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제주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국심사가 꼼꼼히 이뤄지지 않는 무사증 입국자 증가가 외국인 범죄 증가의 한 요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20일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무비자 입국제도가 시행된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외국인 범죄통계조차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을 정도로 도내 전체 범죄 가운데 외국인 범죄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외국인 범죄통계가 시작된 2011년 121명으로 집계됐던 외국인 범죄자 수는 2012년 164명, 2013년 299명, 2014년 333명, 2015년 393명으로 매해 증가하는 가운데 올해 들어 그 증가세가 급격해졌다.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 특히 무사증 입국자의 증가세와 외국인 범죄자 수는 거의 흐름을 같이 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제주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은 397명으로 2015년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파악된 외국인 범죄자 가운데 74.8%인 279명이 중국인이다.

도내 외국인 범죄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257명보다 140명이 늘어 54.4%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 그 수는 600명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의 대부분은 중국인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외 국가 국민의 범죄는 대부분 교통법규 위반 등 경범죄인 것으로 파악됐다.

◇ "무비자 입국 폐지 신중해야" vs "전면 폐지 포함한 대책 모색해야"
김영진 제주도관광협회장은 "올해 외국인 관광객 248만명이 제주를 찾았고, 그 가운데 85%인 210만명이 중국인"이라며 "제주 관광의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무사증 입국제도에 대한 논의는 신중하게 접근해 보완해야 하기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중국 관광객 3인 이상을 모집해 행사를 진행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전담여행사 지정을 받아야 하지만 제주에서는 무사증 입국제도 시행으로 인해 전담여행사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태"며 "제주에서 강제성을 가진 전담여행사 제도가 정착되면 전담여행사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통해 무사증 입국자에 대한 관리도 가능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전담여행사 제도를 통해 중국계 여행사들이 무분별하게 모집하는 저가·저질 단체관광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

또 "현재 중국관광객 인바운드 업체 가운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계 여행사가 95%, 중국 외 화교권 여행사가 3%, 도내 여행사는 1%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담여행사 제도 현실화가 이뤄지면 저가·저질 관광업체들이 퇴출당해 중국인 범죄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른 여행업계 관계자는 중국관광객 전담여행사 제도와 함께 무비자 사전입국심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중국관광객 전담여행사가 단체여행을 신청한 관광객의 신원을 중국 여유국을 통해 전달받고 이를 법무부가 입국 전에 사전심사하도록 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불법체류와 범죄 발생의 가능성을 함께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무비자 입국 제도를 근본적으로 폐지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좌광일 제주경실련 사무처장은 무사증 입국제도의 전면 폐지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도민 안전 확보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좌 사무처장은 "첸씨 사건으로 외국인 범죄에서 안전한 곳이 없다는 사실에 도민들이 느끼는 위기의식과 분노 정도가 한계에 다다랐다"며 "무사증 입국제도의 유지와 폐지, 개선에 따르는 득과 실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무사증 입국제도 폐지에 따르는 실이 명백한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입국자 신상 정보를 추가로 확보할 방법을 마련하고, 중국과 범죄 예방 및 수사를 위한 정보 교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경찰의 외사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국제대 경찰행정학과 황정익 교수는 "제주출입국관리소 측은 현재 무사증 입국자에 대해 얼굴 사진과 검지 지문에 대한 정보만을 받고 있다"며 "관광 이외의 목적으로, 특히 불법취업이나 범죄를 목적으로 무비자 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을 걸러낼 수 있도록 지문 등 개인정보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기술적 측면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고 말했다.

또 중국 공안당국으로부터 범죄자 정보 등을 원활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대책 마련 분주한 제주도…'두 마리 토끼' 잡을 묘수 찾아야
제주도와 국정원, 검찰, 경찰,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유관 기관은 19일 오후 제주도청에서 부랴부랴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제주를 비자 입국지역으로 전환하자"는 내용으로 올라온 청원의 서명자 수가 하루 만에 목표치인 1만명을 넘어서는 등 무사증 입국제도에 대한 반감이 전방위로 확산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회의에서 "경찰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의 부족한 인력과 기구, 전문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며 "외국인 범죄 문제가 제주에 국한한 것이 아닌 국가적 현안이어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주무부처 장관 등에 외국인 범죄 재발방지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검토하고 협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주제주중국총영사관을 통해 대책을 검토해 달라고 강력히 촉구하겠다고도 밝혔다.

원 지사는 우선 타국의 무사증 제도 운영상황과 경제, 외교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출입국자의 신상 정보를 추가 확보하는 등 보완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조속한 시일 내에 1단계로 정리된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절대적 수를 줄이지 않는 한 범죄 발생 자체를 줄이기 힘든 데다, 개인 신상 정보의 추가 확보가 인권침해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으며, 중국 당국과 공조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은 '양날의 칼'이 된 무사증 입국제도가 가져다준 득과 실을 이미 충분히 몸소 느낀 상태다.

애써 외면해왔던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이상 해결을 미룰 수는 없게 됐다.

제주도가 치안 확보와 관광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묘수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ji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