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도 엄단…'동반자살' 빙자, 처자식 살해한 50대 징역 35년 선고

지난 19일 밤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부부가 자녀 2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부부는 수십억원의 채무에 시달리는 처지를 비관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가족을 안타까워하는 글도 올라왔지만,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진 두 자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대다수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가족이 함께 숨진 이번 사건과 관련, 부모가 자녀의 생존권을 박탈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 함께 숨진 큰딸이 유서를 남겼고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사회관계망(SNS)에 남겼다고 하지만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 자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부모가 몰아갔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모가 극단적인 선택에 앞서 자식을 해치는 행위는 동양,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구에서는 부부나 연인이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는 있어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이승과 작별을 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한국이 10여 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도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자녀에게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는 잘못된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전남 여수의 한 주택에서 40대 아버지와 6살배기 아들이 집안에 피워놓은 번개탄 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2월에는 충남 천안의 한 모텔에서 모녀가 함께 숨졌다.

객실 안에서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

청주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최영락 전문의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의식구조가 동양문화, 특히 한·중·일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나타나는 악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부모는 명백한 살인자"라며 "동반자살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가족을 해치는 행위는 살인죄를 적용,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거나 살해하는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엄벌 의지도 강하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주식 투자에 실패하자 경제 사정을 비관하다가 처자식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박모(51)씨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4년 12월 대전에서 검거된 박씨는 처자식을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정에서는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를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마저도 가벼운 징벌이라며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심신 미약을 재차 주장하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처자식을 살해한 박씨를 용서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는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등을 살펴보면 원심의 징역 35년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국제적인 아동 보건·보호 전문 비정부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것은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참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부모의 처지가 아무리 절망스럽다고 해도 자녀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자녀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명백한 살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6조에도 '모든 아동은 생명에 관한 고유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관계자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상에서도 부모의 극단적 행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청주 일가족 사망 기사에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은 "극단적 행동을 하는 부모라면 애당초 부모의 자격이 없는게 아닐까"라고 반문하며 "이러다가는 부모 자격증 시대가 오겠다"고 우려했다.

또다른 누리꾼은 "자녀는 부모의 전유물·소유물이 아니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며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 후 키워왔다고 해서 자녀의 생명을 빼앗을 권한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대환 청주 정신건강센터 관장은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후 처지를 비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례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이웃이 서로 돕고 고민을 나눴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 오히려 옆집과 인사만 나누거나 아예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사회안전망이 붕괴했다고 김 관장은 꼬집었다.

청주의 40대 부부가 극단적 행동을 한 것 역시 좁게는 주변 이웃, 넓게는 복지제도를 불신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 관장은 그러면서 정부 차원의 사회안전망 강화와 함께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시스템을 보완, 극단적 선택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게 우리 사회"라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