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종교계, "모호한 법률 규정 개선해야" 한목소리

정부가 임종 단계에 접어든 말기 환자의 '웰다잉'(well-dying)을 목적으로 한 '호스피스·연명 의료법'을 지난 2월 제정한 가운데 해당 법이 실제로 적용되기 전에 조금 더 명확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과 이동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신부는 19일 열린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 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후속대책 토론회'에 참석해 향후 필요한 법률적 보완사항을 지적했다.

호스피스·연명 의료법은 1997년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를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 조치한 보라매병원 소속 의료인에게 살인 방조죄로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식물상태로 연명하는 환자에 대한 가족들의 연명치료 중지 요청을 대법원이 받아들였던 '김 할머니 사건'을 필두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촉발됐다.

올해 2월 국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권고안을 바탕으로 제19대 국회가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 등 일부 의원발의 법안을 병합·심의함으로써 호스피스·연명 의료법이 제정됐으며 2017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연명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뜻한다.

윤영호 단장은 "호스피스·연명 의료법은 질병 치료가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포기가 아닌 '전인적으로 돌봄'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마련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법 시행에 따라 자칫 '현대판 고려장'이나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으며 의료현장에서의 혼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연명치료와 호스피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지만 이에 대한 인식과 정보가 크게 부족해 환자·보호자·의료진 간 마찰이 가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윤 단장은 "모든 질환의 말기 환자가 아니라 암·만성 간 경화·만성폐쇄성폐질환·에이즈 환자만 대상에 포함된 점도 쟁점"이라며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한정돼 있으므로 형평성 논란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윤 단장은 ▲ 연명치료 및 호스피스 대상자 확대 ▲ 연명 의료계획의 자세한 설명 및 의사결정권 보완 ▲ 범부처별 행정적 지원대책 마련 ▲ '웰빙·웰다잉' 문화운동 전개 등 4가지 후속조치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단장은 "빈부 격차와 지위 고하를 떠나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맞을 권리는 모든 국민에게 있다"며 "임종 환자에 대한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전담 인력 배치 방안을 모색하는 등 법 시행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동익 신부는 현재 통과된 법에서 '연명치료'와 '호스피스' 대상자가 불일치됐다는 부분에 비판을 가했다.

이 신부는 "'연명 의료결정의 대상'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을 명시했으나,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했다"며 "만약 연명 의료결정을 하지 않은 사람이 호스피스를 신청할 경우 최종 단계에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이 신부는 "법 제2조 제8호에 따르면 연명 의료계획서 요청의 주체가 의사가 아닌 환자가 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하려는 의사가 환자에게 연명 의료계획서를 작성해달라는 행위 자체가 현재 우리나라 현실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k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