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아래서도 보육교사 아동학대 꼬리 물어
전문가 "고통스러운 과도기 지나는데 3∼5년 걸릴 듯"

국내 모든 어린이집에 CC(폐쇄회로)TV 설치를 의무화한 지 1년이 지났다.

전국 4만2천여개 어린이집은 작년 9월 시행된 개정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앞다퉈 CCTV를 달았다.

어린이집의 보육실, 공동놀이실, 놀이터, 식당, 강당마다 1대 이상의 HD(고해상도)급 CCTV가 매일 돌아가고 있다.

촬영된 영상은 적어도 60일간 보관된다.

CCTV 설치 의무를 어기면 개원 허가가 나지 않고 이미 문을 연 어린이집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보호자는 아동학대 또는 안전사고 피해가 의심되면 언제든 CCTV 영상 열람을 요청할 수 있는데, 어린이집이 이에 응하지 않아도 과태료를 물게 된다.

◇ "굶기고…걷어차고…때리고…" 여전한 어린이집 학대
보육교사의 인권 문제와 사생활 침해를 둘러싼 격렬한 논란에도 CCTV 설치 의무화에 힘이 실린 이유는 학대 예방 효과 때문이었다.

항상 머리 위에서 CCTV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보육교사가 버젓이 아이들을 학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이런 기대를 무색케 한다.

경북 안동에서는 최근 원생 7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20대 어린이집 교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교사는 5세 아이의 뒤통수를 때리고 정강이를 차는 등 폭력을 일삼았다.

바지에 소변을 본 아이의 옷을 벗기고 때리거나 밥을 안 주고 구석에 놔둔 장면도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인천에서는 지난 12일 낮잠을 자는 2살짜리 원생의 목을 잡고 바닥에 여러 번 밀친 혐의 등으로 20대 어린이집 교사가 입건됐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자녀의 목 뒤에 난 상처를 보고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CCTV에는 해당 여교사가 아이를 엎드리게 한 채 이불을 덮고 밀치는 모습이 찍혔다.

이달 초 경남 거제에서도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4세 아동 2명에게 접착용 테이프를 붙이는 방식으로 학대했다는 끔찍한 내용의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 보육교사들 "CCTV가 불신 키워"…자살 시도하기도
어린이집에서 실제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들은 CCTV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16일 "집에서 다친 작은 상처를 놓고 원생의 부모가 어린이집을 찾아와 CCTV 영상을 보자며 무작정 죄인 취급할 때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음성이 녹음되지 않고 특정 지점만 비추는 CCTV 영상을 본 부모가 엉뚱한 의심을 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7월에는 충남 아산의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관련 동영상이 무차별하게 나돌면서 40대 여교사가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여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고 SNS를 통해 유포된 동영상에 본인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사실에 충격을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가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일선 보육교사를 관리하는 어린이집 원장들은 CCTV 도입 배경과 필요성은 이해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했다.

인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예전에는 부모와 보육교사 사이에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보이지 않는 신뢰가 있었는데 CCTV가 모든 걸 바꿔놨다"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CCTV 영상에서 분명하게 판명되는 폭행이 아닌 방치나 따돌림 등 정서적 학대는 단순 영상만으로 시비를 가리기 어려워 분쟁의 발단이 된다"면서 "CCTV영상 열람을 더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불가피한 과도기…3∼5년 지나면 안정될 듯"
전문가들은 CCTV 설치 의무화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어린이집 학대가 감춰졌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CCTV 설치 의무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유는 지난해 발효된 아동학대 특례법과도 관련이 있다"면서 "특례법 이전에 노출되지 않았던 것들이 더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CCTV는 어린이집 현장에서 이미 상당한 학대 예방 효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문제에 있어 더 높은 단계로 나가려면 현재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불가피하며 3∼5년 후에는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육을 통해 충분한 자질과 전문지식을 갖추고 부적절한 일부 보육교사가 퇴출되기까지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보육교사 인성교육을 더 강화하는 등 CCTV 설치 이외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창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보협력팀장은 "CCTV는 학대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되지만 CCTV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부모와 보육교사 간 소통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노력하고 보육교사의 처우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