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등 소외계층 여전히 쓸쓸…합동차례로 외로움 달래
명절 근무자·취업준비생도 "고향 가고 싶어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고향의 부모와 친지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지만, 명절이 다가오는 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사람도 많다.

쪽방촌 주민, 복지시설에 몸을 맡긴 사람 등 소외계층뿐 아니라 비행기 승무원, 철도 기관사 등 명절이 되면 업무가 더 바빠지는 직종 종사자는 오히려 고달픔과 외로움을 호소한다.

6일 돌아본 서울 용산구 동자동과 후암동 일대 쪽방촌에서는 추석을 맞는 흥겨움이나 가족과의 조우를 기대하는 훈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곳에는 홀몸 노인이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2천여명이 거주한다.

이들은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쪽방에서 산다.

8년 전 동자동 쪽방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최모(78) 할아버지는 "드문드문 연락해오던 아들이 연락을 끊은 지가 1년이 넘었다.

이번 추석에는 연락이 오려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고 한 유모(49)씨는 "번듯하게 산다면야 어머니 뵐 면목이 있지만,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처지를 보여 드리면 속상하실까 봐 집에 가는 건 애초에 포기했다"며 "차라리 이곳에서 정이 든 사람끼리 조촐하게 모여 쓸쓸함을 달래는 게 낫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600명 가까이 모여 사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다는 A(65)씨는 "다들 고향은 있지만, 수급비 60여만원으로 먹고 살다 보면 고향에 갈 엄두도 못 낸다"며 "이번에 서울시에서 돈이 없어 고향 못 가는 사람들 수요 조사를 하라고 했다는데 혹시 돈이라도 나오면 많이들 갈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는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이나 단체에서 일주일 내내 왔는데 요즘은 거의 안 온다"며 "여기 사람들끼리 밥이나 한 끼 먹고 담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명절 때마다 종로쪽방상담소 '사랑의 쉼터' 주재로 공동 차례를 지낸다.

올해는 12일에 한다.

정민수 '사랑의 쉼터' 국장은 "이곳 주민은 대부분 가족과 단절돼 있어 명절이라고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다"며 "다들 후원 물품이나 많이 들어왔으면 하고 바라면서 명절을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정 국장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공짜 후원'만으로는 이분들을 진정으로 돕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은 것이라도 노력해서 얻을 수 있도록 복지 정책이 변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분들의 자활을 돕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소외된 이들이 모인 복지시설 등도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연휴를 기다리고 있다.

노원구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 관계자는 "명절이라고 해서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지원이 별다르게 늘어나지는 않는다"며 "이곳에서 일한 지 몇 년 됐는데 연휴가 평소와 달랐던 기억은 딱히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가족이나 지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찾아오니 여기 계신 분들은 연휴를 기다린다"며 "바쁜 일상 때문에 챙기지 못했던 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명절의 힘이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소외계층뿐 아니라 명절이 다가와도 여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비행기 승무원이나 열차 기관사 등 다른 이들이 편안한 연휴를 보내도록 쉴 틈 없이 일하는 사람들, 혹독한 취업 전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지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이다.

외항사 객실승무원인 황모(34·여)씨는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하는 일이 이제 낯설지 않다.

황씨는 "입사한 지 8년이 다 돼서 열 번 넘게 명절을 맞았지만, 식구들과 명절 당일 식사를 같이 한 건 손에 꼽을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명절에 휴가를 붙여 외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명절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타지에서 맞는 추석이 낯설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절에는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연휴가 끝나는 대로 근무가 없는 날에 집에 들러 뒤늦게 명절 분위기를 내볼까 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동대문승무사업소 소속 박헌주 기관사(51)는 고향이 경북 문경이지만 이번 추석 연휴 사흘 내내 서울에서 일해야 한다.

박씨는 "처음에는 근무 때문에 고향에 가지 못하면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열차는 '시민들의 발'인 만큼 누군가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젠 괜찮다"며 "이번 추석도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2호선 열차를 운행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근무하며 보낼 예정"이라고 미소 지었다.

이들과는 반대로 시간이 있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올해 초 대학졸업 후 노량진 고시촌에 들어온 강모(27)씨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다.

고시촌 식당 밥에 질려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석 달 남은 시험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강씨는 "명절이 오는지도 모른 채 공부하는 다른 수험생들을 보면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명절에는 보름달에 합격 소원을 비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시험에 합격해 내년 명절 때는 양손에 두둑이 선물을 들고 집에 가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박경준 설승은 기자 kamj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