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부 조치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손배 책임은 인정 안돼"

1945년 태평양전쟁 때 일본 나가사키·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된 국내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서울북부지법 제13민사부(조양희 부장판사)는 31일 일본 원폭 피해자 141명이 국가를 상대로 1인당 1천만원씩 총 14억1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단 "원고들의 연령 및 피해 구제의 절박성 등에 비춰 정부의 조치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소송 제기의 당위성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는 등 외교적 교섭 노력을 계속하는 한 더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헌법상 작위(作爲·일정 행위를 하는 것)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원고들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행정 행위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돼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뒤따른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일본 정부 상대의 원폭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했는지에 관한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이 협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不作爲·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후 2013년 8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원 79명은 전체 회원 2천545명을 대표해 헌재 결정 이후 정부가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1인당 1천만원을 지급하라는 첫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따라 중재 절차를 요청해야 함에도 하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았다.

분쟁해결 절차로 나아갈 최소한의 작위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아 불법이고, 이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해 6월 소송을 기각했다.

원폭피해자협회는 항소하는 한편 서울남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에 각각 230명과 141명이 유사한 청구 취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첫 손배 소송은 고법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역시 기각돼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남부지법에 제기된 소송도 원고들이 패소한 뒤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kamj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