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의 뉴스레터] "그분들에게 진 빚을 잊지 마시오"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이 몇 마디는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 프랭크 스코필드(1989.3.15~1970.4.12) 박사가 돌아가시기 직전 국내 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입니다. 1919년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을 비롯해 제암리 학살사건 등 온갖 일제 만행을 사진을 찍어 해외에 고발하며 독립운동을 함께 한 분입니다.

영국계 캐나다인인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 치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시절 얻은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본명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돌처럼 굳센 의지(石)와 호랑이 같은 용맹(虎)으로 조선사람들을 돕는다(弼)’는 자기의 각오를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애 대부분을 한국에서 살았고,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천식 치료를 받다 타계하자 광복회 주최의 사회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한국경제신문 8월10일자 A33면 <'파란눈의 독립운동가' 후손 41명 방한>기사를 읽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가 진 빚이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광복 71주년을 맞아 외국에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 41명을11~17일 한국으로 초청한다고 9일 밝혔다. 이들 중에는 스코필드 박사 등 외국인 독립유공자 3명의 후손 9명도 포함됐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를 발간해 일제의 만행을 비판한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 선생과 미국 의회에서 일제의 한국 침략을 규탄한 조지 노리스 전 미 연방 상원의원의 후손들도 이번에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다.”

얼마 전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합정역 가까이에 있는 양화진 묘원에는 개국 초기 선교사로 들어와 한국의 독립과 근대화에 헌신한 6개국 145명의 선교사들이 가족들과 함께 영면해 있습니다.

베델 선생을 비롯해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비슨 선교사,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턴 부인, 젊은 나이에 조선에 들어와 고아원을 짓고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생 일가 등의 묘(墓)가 한강을 내려다보는 양지 바른 곳에 모여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가족묘역에는 대여섯 살 밖에 안 된 어린 자녀가 함께 묻혀 있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한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로부터 국권(國權)을 되찾은 지 71주년을 맞은 날이었습니다. 주말과 겹쳐 사흘 연휴를 즐기게 해 준 날로만 여겨진 것은 아닌지, 석호필 박사의 음성이 쩌렁쩌렁 귓전을 때립니다.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한국경제신문 기획조정실장 이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