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모든 성숙단계에 있는 산업은 3개의 선도기업이 주도한다는 ‘3강(强) 법칙’이 있다. 이들 3강 기업은 전체 시장과 광범위한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기 때문에 ‘전면적 제너럴리스트’로 불린다. 각각 10~40%의 시장을 점유, 합하면 70~90%의 시장을 지배한다. 이들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더욱 높은 수익성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이 40% 선을 넘으면 정부 규제에 놓이게 되고, 반(反)독점소송 대상이 되는 등 규모의 비(非)경제가 발생해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정규석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정규석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이들 3강 외 기업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5% 정도의 시장을 점유하는 스페셜리스트다. 이들은 다시 특정한 제품군을 다양한 시장에 공급하는 ‘제품 스페셜리스트’, 특정 지역이나 인구층에 여러 제품을 공급하는 ‘시장 스페셜리스트’, 특정 시장에 특정 제품만을 공급하는 ‘초대형 틈새자’로 나뉜다. 이들은 차별화가 잘 이뤄지고 브랜드 충성도도 높기 때문에 3강 못지않은 높은 수익률을 실현한다.

또 하나의 부류는 5~10% 정도의 시장을 나눠 갖는 기업이다. 이들은 전체 시장을 아우르는 3개 제너럴리스트와 특정 시장·제품에서 차별화되거나 전문화된 스페셜리스트 사이에 있다. 이들은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한 시장과 제품을 지닌 부류다. 제너럴리스트에 비해 규모의 효율성을 갖추기 어렵고 스페셜리스트처럼 특정 소비자 그룹의 충성심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들은 가격경쟁을 위해 제품의 질과 서비스를 낮춰 비용을 삭감하려는 경향이 있고 수익률도 낮다. 이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므로 ‘함정에 빠진 기업’이라고도 한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일반적으로 3개의 대안을 떠올린다. 독점 또는 2개의 기업이 과점 상태로 있는 경우에는 세 번째 기업이 나타나기 쉽고, 더 많은 기업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치열한 가격 경쟁과 품질 저하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어 기업과 수요자 모두 피곤해진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3개의 선도기업으로 압축되므로 이 ‘3강 법칙’은 조화와 균형을 갖는 경쟁시장의 자연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로 장벽이 높았던 시기에는 3강 법칙이 국가별로 적용됐다. 그러나 세계가 단일시장으로 변해가는 오늘날 3강 법칙은 글로벌 시장에 적용되고 있다. 산업별 세계시장은 글로벌 3강이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맥주, 렌터카, 시리얼, 타이어, 보험, 알루미늄, 석유, 화학, 항공, 피자 체인, 청량음료, 운동화 등은 3강 법칙의 추진이 완료된 산업이다. 자동차, 은행, 제약, 정보통신, 휴대폰 등은 3강 법칙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3강 체제로 굳어지는 산업구조의 변화는 미국 기업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세계시장에 개방돼 있고,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며, 세계 1등 글로벌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1등이라고 해봐야 글로벌 시장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한국 기업들에는 위기이며 벅찬 도전인 환경이다.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시작과 함께 세계화 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까지 저품질·저가격의 3류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 상품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중품질·중가격의 2류 수준으로 올라섰다. 그때까지도 글로벌 시장은 저품질·저가격, 중품질·중가격, 고품질·고가격 시장이 공존하는 구조였다. 그러다가 선진국의 고기술과 후진국의 저임금 같은 경영자원의 글로벌 결합으로 고품질·저가격 제품의 출현이 가능해졌다. 고품질 제품만이 생존 가능한 시대를 맞아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들어 상당수가 ‘21세기 세계 일류’라는 비전이나 목표를 내세우고 거대한 도약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에는 도전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으로 나뉘고, 성공하지 못한 기업 상당수는 도태되거나 인수합병됐다. 도전에 성공한 기업은 글로벌 3강이나 글로벌 스페셜리스트로서 자리 잡았거나 가까이 다가간 기업들이다.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현재 주력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서비스업을 위주로 한 많은 다른 산업은 국내 시장이란 틈새시장에만 주목하고 있다. 유통·요식산업은 글로벌 도전자를 물리치고 뿌리를 확고히 내렸으며, 또 다른 산업들은 정부 규제, 진입장벽 등을 방패 삼아 국내 시장을 지켜내고 있다.

글로벌 3강이 지배하는 글로벌 산업구조에서 한국 기업들의 생존 가능한 형태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글로벌 3강에 포함돼 세계적 지배력을 가지는 ‘글로벌 메이저’다.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이 이런 예다.

둘째, 아시아 등 일정 경제권역이나 특정 제품군에서만 경쟁력을 지니는 ‘글로벌 마이너’다. 시장 전문화 기업이나 제품 전문화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아시아에서 경쟁력이 높은 화장품이나 한류 등은 시장 전문화의 예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롤 모델로 언급되는 독일의 세계적 히든 챔피언은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제품 스페셜리스트에 해당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기업이 매우 부족하다.

셋째, 국내 시장에서만 경쟁력을 발휘하는 기업이다. 금융, 통신, 제약, 유통, 교육, 의료, 농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동차산업에서 보듯이 세계적 메이저의 자회사나 종속 관계로 생존하기도 한다. 이들은 규제나 진입장벽 덕에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 국가별 진입장벽이 점점 약해지는 추세여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거꾸로 의료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은 갖고 있으나 규제가 글로벌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넷째, 국내 특정 시장과 지역에서만 경쟁력을 지니는 ‘틈새기업’이다. 요식업, 소매업, 지역건설업, 관광업 등 자영업 중심의 지역 서비스업들인데 이들은 글로벌 기업이나 국가적 기업에 의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수익성 및 생존율도 떨어진다.

마지막으로는 완제품 생산업체들에 부품이나 비즈니스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재 또는 잠재적 경쟁자와 비교해 핵심역량을 갖추지 못할 경우 협상력이 약해져 낮은 수익률과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한다.

시장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며 글로벌 3강이 산업을 선도하고, 글로벌 스페셜리스트가 시장이나 상품을 차별화해 생존하고 있는 시대다. 한국 기업에는 커다란 위기였지만 적지 않은 기업이 잘 대응하며 경제를 이끌어 왔다.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수많은 기업은 이미 망했거나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산업구조 변화를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극화 해소하려면 더 많은 글로벌 기업 키워야

세계화와 함께 글로벌 3강이 지배하는 산업구조로의 변화 속에서 다수의 한국 기업이 국내 3강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성공 덕분에 오늘날 한국 경제가 많은 무역흑자를 내며 버티고 있다.

이들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인재 확보 차원에서 또는 노조의 압력에 밀려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 수준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고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다른 많은 기업은 지급능력 부족 탓에 1인당 GDP에 걸맞은 수준의 임금을 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 양극화가 임금의 양극화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으며, 성공한 기업에 대한 질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러 해전에서 왜적을 막아 국가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도망치던 왕을 포함한 많은 무능한 관료의 질시 대상이 돼 토사구팽의 어려운 지경에 처한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지금의 경제전쟁은 무한히 계속될 수밖에 없는 무한전쟁이다. 그러니 국민적 화합을 심각히 저해하는 갈등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일한 생산적 대안은 글로벌 경쟁역량을 갖춘 기업이 더 많이 생겨나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기업이 많아지는 것이다. 즉, 혁신을 통한 저부가가치 기업들의 역량 제고 및 이에 따른 고부가가치화와 고임금화다. 임금이 낮은 중소 제조업 및 서비스 업종의 고품질화를 통한 고임금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