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물 뿌려 지열 식히고 동굴엔 피서 인파 급증…수박도 '선캡'
15일까지 무더위 계속…"휴식은 짧게 자주…노약자 세심한 배려 필요"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가 이어지던 지난 4일 오후 충북 음성군 원남면 보천2리 마을 정자에 숨통을 틔워주는 한 줄기 바람이 돌기 시작했다.

이 마을 출신 사업가가 정자를 사랑방 삼아 지내는 어르신들이 무더운 여름을 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구슬땀을 흘리며 손수 천정에 선풍기를 달아줬다.

타향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 사업가는 폭염 속에서 연신 땀 줄기를 닦아내며 정자에 앉아 있을 고향 어르신들이 눈에 밟혀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음성군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 2천100여 명은 최근 '폭염 부채'를 하나씩 지급받았다.

노인들의 탈진과 온열병을 막기 위해 지역 노인회가 나눠준 것이다.

부채에는 폭염 시 행동 요령과 응급조치법도 노인들이 알기 쉽게 소개했다.

가을의 문턱 입추가 지났지만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국 방방곡곡이 '불판'처럼 달궈진 채 식을 줄 모른다.

아무리 더워도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가마솥 더위를 이겨내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부산에서는 지난달 24일부터 도심 고온 현상을 해소하고자 각 구·군이 보유한 거리 청소차량과 산불 진화용 차량 등 살수차 31대를 총동원하고 있다.

살수차는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중앙대로를 비롯해 주요 도로 228㎞ 구간을 누비며 하루 229t의 물을 바닥에 뿌려 지열을 식힌다.

대구와 전주 등 다른 도시들도 동원 가능한 살수차를 모두 투입해 지열을 잡기 위한 살수 작업을 연일 계속한다.

뙤약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보행자들을 위해 교차로 곳곳에는 신호 대기 그늘막도 잇따라 설치됐다.

시민을 위한 작은 배려다.

충북에서만 130개의 신호 대기 그늘막이 운영 중이다.

무더위 쉼터도 지자체별로 운영되고 있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휴가나 주말이면 너도나도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다 보니 잠시나마 바깥 세상의 폭염을 잊을 수 있는 동굴로 피서 인파가 몰린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으로 180여 개의 석회암 동굴이 산재한 천연동굴의 고장 단양군이 대표적이다.

천연기념물 제261호인 단양 온달동굴은 지난 7월 한 달간 방문객이 2만2천711명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1만6천129명보다 40.8% 증가했다.

천동동굴(지방기념물 제19호)도 평소에는 여름철 하루 평균 방문객이 500명에도 못 미쳤지만 요즘에는 1천 명 이상이 찾는다.

지난해 11월 시설정비에 들어간 고수동굴(천연기념물 제256호)도 대목을 놓칠세라 오는 13일 재개장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방문객 센터 신축 현장에서 단단한 암반이 나오는 바람에 터파기에만 3개월이 걸려 공사에 큰 차질을 빚었지만, 밤잠을 설쳐가며 개장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수동굴은 녹슬어 낡고 지저분했던 기존 철 구조물을 스테인리스로 완전히 교체해 미관뿐 아니라 안전성을 한층 높였다.

세계적 권위의 호주 출신 동굴 조명 연출가와 한국동굴연구소의 공동 작업으로 동굴의 멋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도 갖추고 손님 맞을 채비를 끝냈다.

고수동굴은 1천700m에 이르는 자연동굴로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로 손꼽힌다.

단양군 관광관리공단 관계자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더위도 식히고 자연의 신비도 느낄 수 있는 동굴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폭염과의 전쟁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농작물과 가축의 경우 요즘 같은 날씨에 자칫하면 생장뿐 아니라 생명에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말 그대로 사투가 벌어진다.

출하를 기다리는 수박은 신문지나 파마용 비닐 캡으로 만든 모자를 뒤집어썼다.

껍질이 익으면 겉이 노랗게 탈색돼 상품 가치가 떨어질 뿐 아니라 일종의 화상인 열해(熱害)가 발생해 출하 자체가 불가능하다.

닭, 오리, 돼지 축사에는 선풍기와 물 분무장치가 쉴 새 없이 가동되지만 더위를 이겨내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축산농가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안타까운 폐사가 잇따른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는 15일까지는 35도 안팎의 무더위가 이어지고 열대야 현상도 자주 발생할 것으로 보여 건강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국민안전처는 '폭염 대비 국민행동요령'을 통해 "불필요한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며, 휴식시간은 짧게, 자주 갖는 게 좋다"며 "특히 거동이 불편하고 체력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에게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k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