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5만5천여명 병원 찾아…매년 증가, "약물 대신 근본 원인 찾아야"
'졸피뎀' 의존도 커져 관련 시장도 성장…부작용 속출에 규제 목소리도

중세시대 유럽 사람들은 잠을 끊어서 하루에 두 번 잤다.

해가 저물 녘 잠자리에 들어 자정까지 숙면을 취한 뒤 일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기도 혹은 독서를 하거나 부부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수면 패턴은 17세기 들어 램프 설치로 밤거리가 환해지자 변하기 시작했다.

램프 덕분에 밤에도 낮처럼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한 번 끊을 정도의 오랜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불면증 호소자 400만명 시대…수면장애 환자 매년 '증가'
오늘날 한국인 중 중세시대만큼이나 긴 밤을 버텨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중세 유럽인이 '생산적인' 밤을 보냈다면 현대인은 약품에 의존해 '괴롭고 무의미한 불면의 밤'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졸피뎀 성분이 들어간 불면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용으로 쓰이는 수면 유도제로 복용 시 15분 이내 잠이 들 정도로 약효가 빠르다.

그러나 과다복용 시 피로감,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며 심각할 경우 환각이나 기억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중독성이 강해 우리나라에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관리하고 있으며 의사 처방이 있어야 복용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0년 28만9천526명에서 2011년 32만5천192명, 2012년 35만8천199명, 2013년 38만3천977명, 2014년 41만4천845명, 2015년 45만5천88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의 경우를 살펴보면 40대 이상이 33만7천642명으로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불면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은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서 실시한 불면증 실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전체 성인인구의 12%인 400만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수면장애 환자가 매년 늘어나는 원인으로 밤에도 인공조명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야근이나 운동 등 밤늦게까지 활동하게 되면서 생활리듬이 깨진 것을 가장 큰 불면증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잦은 야근과 회식 등 우리나라는 밤 문화가 너무 발달해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불면증에 걸리는 것은 분명 특정한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불면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이유로는 전두엽 노화와 노후불안으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꼽혔다.

한진규 원장은 "의학적으로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전두엽 노화로 잠이 줄어들고 사회적으로는 중·노년이 될수록 일자리·노후불안 등 스트레스 요인이 많아져 불면증 환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는 나이를 먹을수록 수면 조건이 나빠지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 높은 졸피뎀 의존도 '우려'…편법으로 과다복용 가능해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불면증 치료제 시장도 커졌다.

관련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생산되는 졸피뎀 성분 의약품은 1억정이 넘는다.

생산금액만 2백억원을 웃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졸피뎀 성분 의약품은 2013년 19개 품목 1억1천310만66정, 2014년 17개 품목 1억910만4천60정, 2015년 1억2천25만596정이 생산됐다.

생산금액을 살펴보면 2013년 220억6천678만5천원, 2014년 208억8천49만8천원, 2015년 224억5천93만5천원이었다.

그러나 불면증 치료제의 오·남용으로 각종 부작용 사례가 속출하자 졸피뎀을 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주택에서 최모(62·여)씨는 졸피뎀 계열의 불면증 치료제를 과다복용한 뒤 거동불가 상태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해 11월 20일엔 대전 더덕구에서 김모(52)씨가 불면증 치료제를 먹은 뒤 한 식당의 창문을 뜯고 들어가 현금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졸피뎀을 평소보다 많이 먹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식당에 들어가 금품을 훔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범행에 앞서 그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졸피뎀 계열 수면유도제를 2정 복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장기 복용하면 환각·피해망상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수면제를 1만정 넘게 처방받은 여성과 약을 처방해준 의사들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모(25·여)씨는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자신이 자주 다니던 서울 한 병원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24명의 인적사항을 도용, 할시온 등 수면제 처방전을 1천36차례 발급받아 1만338정을 처방받았다.

불면증 치료제인 할시온은 최면 진정제로 분류된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내성이 빨리 생기고 환각·피해망상 등 부작용도 심해 단기간에만 사용된다.

이씨 친구인 전모(25·여)씨도 같은 기간 11명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369차례 3천649정을 처방받았다.

이들은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는데 내성이 생겨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아 여러명 명의로 많은 양을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강력한 효과 탓에 성범죄에 가장 많이 악용되는 약물이기도 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2006∼2012년 의뢰된 진정제 성분 약물 관련 성범죄 148건을 분석한 결과 졸피뎀을 사용한 경우가 31건으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졸피뎀에 내성이 생긴 사람들이 권장량(1일 1회 1정 10㎎) 이상을 복용하고 싶으면 편법을 동원해 얼마든지 이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을 사들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건강보험증 없이 진료받을 수 있고 본인 확인이 의무도 아니라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 명의로 진료를 받고 졸피뎀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창원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는 "의료 쇼핑하듯이 이곳저곳 돌아다녀 처방을 받아오면 '너무 많이 복용하지 마라'고 권고만 할 수 있지 조제를 거부할 수는 없다"며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오는 양도 보면 일일 권장량보다 많은 게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약품 안심 서비스(DUR: Drug Utilization Review)를 확인해보면 중복 처방인지 아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며 "법적으로 이런 환자에게 조제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면 졸피드 오·남용 사례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졸피뎀의 경우 과다복용 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으나 적정량을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 졸피뎀은 '보조제'…"불면증 근본원인 찾아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승철 교수는 "적정용량으로 복약하는 환자군 안에서는 일부 의약계에서 지적한 부작용의 위험성(자살 위험 등)은 크지 않다"며 "다만 한꺼번에 여러 알씩을 복용하는 환자군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관리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졸피뎀 계열 수면제 의존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의 치료와 관리는 약사에게 처방전 개입·관리 권한을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러 의료진의 개입은 오히려 환자의 치료 과정에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졸피뎀은 해외여행 시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을 경우처럼 단기성 불면증에 효과가 뛰어난 약"이라며 "장기적으로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비약물 치료를 병행해 보조적 성격으로 써야 효과가 있지 약만 먹으면 의존도가 커져 부작용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가 안 좋으면 내시경 검사를 받는 등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아야지 소화제만 먹어서는 한계가 있는 것과 같다"며 "비유하자면 졸피뎀은 일종의 소화제로 졸피뎀을 먹기 전에 내가 왜 잠이 안 오는지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면부족에 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고 전문 인력이나 시설 구축이 이뤄져야 약물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원장은 "수면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은 거의 없으니 사람들이 가까운 내과나 가정의학과에 가서 '잠이 안 온다'며 졸피뎀을 처방받는 것"이라며 "사실 그들도 수면 전문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처방이 안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불면증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이와 관련된 사회적·의학적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불면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떨어져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home12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