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폭언도 위험수위…"사회불만 분출창구 전락 우려"
"버스 타면 항상 뒷좌석" 4년째 흉기테러 트라우마 치료도


지난달 22일 오전 10시 무렵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청 2층 사회복지과 사무실로 50대 후반의 남성이 들어섰다.

빠른 발걸음으로 상담창구로 향하던 그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상황을 직감한 청원경찰이 한 걸음 뒤에서 그를 뒤 따라가 사회복지직 여성 공무원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 순간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신병을 넘겼다.

경찰에 연행된 최모(56)씨는 뒤늦게 후회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매달 생계비 9만9천540만원을 받던 그는 이달부터 지원금이 1만8천780원으로 줄자 격분해 전화로 항의하다가 흉기를 들고 구청을 찾은 것이다.

부양의무자(자녀) 소득과 본인 국민연금 수령액이 증가하면 생계비 지급액이 축소되는 연동구조를 납득하지 못한 탓이다.

이달 1일 성남시 분당구청 건축과 사무실에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지상 3층 다가구주택 옥상을 무단 증축해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은 한 민원인이 휘발유가 든 페트병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무단 증축 사실을 모르고 주택을 법원 경매로 취득한 주택 소유주는 2∼3개월 전부터 구청에 부당함을 호소하던 터였다.

구청이 3년 전 무단 증축 사실을 확인해놓고도 실수로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 부과를 누락한 탓도 있었다.

민원인 행동이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여성 주무관을 비롯한 부서 직원들에게는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5월에도 중원구청 한 동 주민센터에 주차위반 과태료를 부과받은 주민이 술에 취해 시너 통을 들고 찾아와 직원 멱살을 잡고 폭언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다.

지난 4월 대전시에서는 술에 취해 주민센터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찾아가 욕설을 퍼붓고 얼굴을 폭행한 임모(54)씨가 관공서 주취 소란 등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공무원에게 "어린 게 싹수도 없다"며 상습적으로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 관련 주민 민원이 구청이나 동 주민센터 최일선 공무원을 향한 폭력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청원경찰을 배치하고 CCTV를 확대하는가 하면 민원상담창구 구조까지 변경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4년 전 흉기 난동 생생…불안장애로 약물 치료 중"
2012년 4월 성남시 중원구청 주민생활지원과 사무실에서 30대 민원인이 휘두른 흉기에 다친 공무원 김모(48)씨는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당시 얼굴과 손을 120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고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불안장애 증상으로 아직 정기적으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하루 두 차례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면 늘 뒷좌석에 앉고 승강기 문이 열릴 때마다 목이 쭈뼛해진다고 한다.

집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면 아들과 동행해야 할 정도다.

지난달 중원구청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처럼 당시에도 일용근로소득이 있어 생계급여 20여만원이 삭감된 민원인이 충동조절을 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민원창구뿐 아니다.

자치단체 콜센터는 악성 민원인들의 단골 분노배출구다.

성남시 콜센터에 따르면 2014∼2015년 전체 문의전화 63만7천313건 가운데 스트레스성 민원(346건), 악성 민원(220건), 감성 민원(126건)은 0.1% 정도인 692건으로 파악됐다.

악성 민원 고객은 욕설, 성희롱, 언어폭력의 정도가 매우 심해 보고된 것으로 단순욕설은 제외한 수치다.

감성 민원 고객은 악성은 아니지만 같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면서 협박하고 불만을 표출하는 유형으로, 사이코패스 성 민원도 포함한 것이다.

1천 건 중 한 건꼴이지만 감성노동을 하는 콜센터 여직원 20명에게는 반복 누적되는 고통이다.

콜센터 한 여직원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나 반말, 고압적인 말투로 인격을 무시당하는 일이 시일이 지나도 줄지 않고 있다"며 그나마 급한 민원을 해결하고 감사하다는 격려 전화를 받을 때가 있어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 "물리적 방어도 한계…상담실 개설해도 머뭇"
각 지방자치단체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사고를 막고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도 철거민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는 성남시는 직원 신변 보호를 위해 무술 유단자인 경호인력 4명(시청 1명, 3개 구청 1명씩)을 채용해 민원실에 배치하고 CCTV도 확충했다.

돌발적인 난동에 대비해 사회복지 부서 창구는 은행창구처럼 민원인과 거리를 둔 광폭 구조로 바꿨다.

그러나 이는 방어적 자구책일 뿐 근본적 해법으로 보기 어렵다.

최근 들어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이 저마다 '시민 주인론', '공무원 머슴론', '무한봉사론' 등의 행정 기조를 강화하면서 민원 일선의 하급 공무원들이 직무 스트레스마저 늘었다고 호소한다.

한 7급 공무원은 "갈수록 무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스마트폰 등 통신 미디어로 발달로 촬영, 녹취,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악성 민원도 확산하는 양상"이라며 "공권력을 무시하는 풍토도 있지만 일부 사회 약자층이나 소외계층의 불만 표출도 적지 않아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심리상담실이나 스트레스 관리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보수성향의 공무원들이 상담실 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성남시가 운영한 공무원 스트레스 관리실에는 1천131명이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달 평균 39명이 찾은 꼴이다.

당시 상담에 참여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전문의 상담 신청자 21명 중 6명이 상담신청을 취소하는 등 다수의 공무원이 상담 이력이나 개인 신상 노출을 꺼려 전문의 상담을 거부했다"고 고충을 전했다.

성남시 전문심리상담사 이지나씨는 "가장으로 억제된 분노나 불만의 감정이 애꿎은 공무원들을 향해 표출되기도 한다"며 "공무원 스스로도 개인적 차원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자조 모임을 형성하는 방법 등으로 적절한 수준의 방어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남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kt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