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도시 이야기-파주] 한강 하구의 '물류관문'…군사구역 해제 후 급성장
사진으로 본 파주
파주는 ‘둑 위의 마을’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파주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하구에 있어 예부터 둑과 제방이 많았다. 이 때문에 ‘언덕 파(坡)’와 ‘고을 주(州)’ 자가 합쳐졌다는 설도 있다.
파주는 한양에서 가까워 임진강을 따라 각종 유통이 발달했다. 이 중 고랑포와 문산포가 물류 집산지로 유명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민들은 한강 마포나루에서 고랑포나루와 문산포나루까지 소금과 새우젓을 황포돛배로 실어 날랐다. 파주의 큰 물줄기인 임진강(臨津江)은 과거에 더덜나루(다달나루)로 불렸다. 더덜나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임진강이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다다르다의 사투리)’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까지 물류 집산지였던 파주는 6·25전쟁 때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다. 파주 설마리전투가 대표적이다. 영국군 제29여단 글로스터 대대가 1951년 4월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에서 중공군의 공세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고지를 끝까지 방어했다. 지금도 매년 4월이면 참전한 영국 퇴역군인들이 이곳에서 기념식을 연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파주는 북한과 철책선을 마주한 대표적인 군사도시가 됐다. 파주시 전체 면적(672.9㎢)의 91%인 612.3㎢가 지금도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속해 있다. 파주시는 2007년 제정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군과 협의해 여의도 면적(2.9㎢)의 20배가 넘는 60.6㎢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해제했다.
파주=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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