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규모 학교가 교육적" vs "지역사회 공동화·불균형 심화"
"제로섬식 통폐합 안돼…학교 재구조화 등 다각적 노력 필요"

교육부가 올해 들어 통폐합 대상 소규모학교의 학생 수 기준을 상향 권고하는 등 학교 통폐합의 고삐를 조임에 따라 전국적으로 500곳이 넘는 학교를 대상으로 통폐합이 추진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당수 시·도교육청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점진적인 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통폐합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으나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

일부 시·도교육청은 학생수가 준다는 이유로 지역사회 거점 역할을 하는 학교를 통폐합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로섬'식 학교 통폐합이 아닌 지역 공동체를 살리고 학교를 재구조화하는 연구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전남·경기 등 7개 교육청 510교 통폐합
30일 연합뉴스가 11개 시·도교육청의 소규모학교 통폐합 추진계획을 취합한 결과 7개 시·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초·중·고 510교를 대상으로 학교 통폐합 및 이전을 추진 중이다.

통폐합 추진계획을 취합한 시·도교육청은 서울과 제주, 대구, 광주광역시, 경상남·북도교육청을 제외한 11개 교육청이다.

통폐합 및 이전 계획을 수립한 교육청 7곳은 경기·인천·부산·전남·충북·충남·강원 등이다.

시도별 추진계획을 보면 전남이 초등 148곳, 중학교 119곳, 고등학교 18곳 등 285곳으로 가장 많다.

다음으로 경기 84곳, 충남 60곳, 충북 27곳, 강원 24곳, 부산 20곳, 인천 10곳이다.

추진 경과는 지역별로 상이하다.

부산 삼광초등학교는 이달 초 학부모 대상으로 찬반 의견을 물어 인근 가락초등학교에 통합하기로 해 사실상 통합이 확정됐다.

경기도교육청은 10월까지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며 전남도교육청 역시 의견 수렴 중이다.

나머지 교육청은 소규모학교 통폐합 추진계획을 세워 교육부에 보고하기는 했지만 '지역사회 반발'을 고려해 아직 설명회 일정도 정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다.

◇ "일부러 시골학교 찾았는데 폐교라니" 거센 반발
통폐합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곳에선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교생이 9개 학급 176명인 용인 성지초등학교가 통폐합 대상 명단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성지초 학생수가 2013년 194명, 2014년 191명, 작년 171명으로 감소추세라 통폐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으나, 학부모들은 "수킬로미터 떨어진 학교로 통학할 수 없다"며 계획을 완강히 거절했다.

전교생이 10명인 용 백암초등학교 수정분교장도 폐교 우선 대상에 올랐지만, 통폐합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분교장 학생 대다수가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학교'를 일부러 찾아온 건데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학교가 도심지역으로 통합되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교를 없앨 경우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돼 지역 간 불균형이 더 심화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인천시교육청이 구도심인 서구 가좌동의 봉화초등학교와 남구 숭의동의 용정초등학교를 2019년까지 각각 청라국제도시, 서창지구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구도심 주민들은 "지역간 불균형이 심해지고 교육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승희 인천시의원은 "다른 지역보다 교육 혜택을 많이 줘야 할 구도심에 학교를 없애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교육포기" vs "적정규모 학교가 더 교육적"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을 바라보는 교육청 간 시각도 판이하다.

전북도교육청은 교육부의 통폐합 기준을 적용하면 도내 전체 학교 761교 중 46.1%인 351교가 통폐합 대상인데, 올해 통폐합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더라도 무분별한 통·폐합은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전북도교육청 측은 "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자는 것은 경제, 정치 논리로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학생수가 적다는 이유로, 또 부족한 교육예산을 충당하겠다며 학교를 통폐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규모 통폐합을 점차 추진하겠다는 교육청들도 교육부의 권고 기준보다 완화한 자체 기준을 만들어 대상 학교를 최소화하고 있다.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소규모 통폐합 기준을 본교 학생수 10명 이하, 분교 학생수 5명 이하로 낮춰 잡았다.

섬이 많은 인천과 전라남도교육청은 교육부 권고 기준과 별개로 1개면 1학교, 1도서 1학교 원칙을 정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경기도교육청은 '학부모 찬성이 70%가 넘지 않더라도 향후 3년간 학생 수가 줄 것으로 예상되는 학교는 분교 형태로 개편한다'는 자체 방침을 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아예 '적정규모학교육담당팀'을 만들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 학교지원과 관계자는 "전교생이 적거나, 학급수가 1∼2개인 학교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더 교육적"이라고 설명했다.

◇ "제로섬식 통폐합은 부적절…학교 재구조화 등 다각적 노력 필요"
교육계 안팎에서는 현 교육부의 통폐합 방침에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정부의 학교 신설에 대한 현재 기준은 학교 하나를 세우면 적정 규모보다 작은 다른 학교 하나를 없애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철 충남교육감은 최근 인터뷰에서 "교육부의 효율화 방안은 돈으로 사고 팔수 없는 지역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논의가 선행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원발전연구원 권오영 부연구위원은 "학령인구 감소로 소규모학교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면 일본, 핀란드와 같은 다른 나라 사례연구를 통해 다각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정부와 문부과학성을 주축으로 학교 중심 지역거점 만들기를 추진 중이다.

핀란드는 통학거리와 상관없이 거점구역을 집중해 학교당 500명 규모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종합학교 재구조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백도인 김근주 이해용 한종구 박재천 형민우 이종민 신민재 이영주)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