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요금 자율화 이후 바가지 논란 지속…비싸도 가격조정·행정처분 못해
지역·업소별 요금 천차만별…"모호한 표시가 문제…명확한 가격 제시해야"

"돈 안 내려고 사기 치는 거 아니냐", "당신이 미용사냐"

고액의 미용 요금을 둘러싸고 미용실 업주와 손님 사이에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요금 자율화 이후 등장한 풍속도다.

최근 충북 충주에서 발생해 경찰 수사로 번진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뇌병변 장애를 앓는 이모(35·여) 씨가 지난달 26일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염색을 하고 신용카드를 건네자 미용실 주인은 52만 원을 결제했다.

이 씨는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에 "염색 값으로 어떻게 한 달 생활비를 받느냐"며 읍소와 항의를 거듭하다 결국 경찰과 장애인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용실 바가지 요금 논란은 이 씨에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16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 9월까지 미용 가격 및 위생과 관련해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민원은 1천655건에 달한다.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이라며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게 대부분이다.

경기도에 사는 A씨도 이 씨처럼 동네 미용실에서 피해를 봤다.

원하는 머리 색깔을 내려면 14만 원짜리 '염색+염색'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염색을 했는데 28만 원이 청구됐다.

미용실 주인이 "'염색+염색' 시술을 2번 했다.

한 번에 14만 원이라고 미리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고압적으로 요금 지불을 요구하는 바람에 A씨는 얼떨결에 28만 원을 주고 등 떠밀리듯 나왔다.

대학생 B씨는 학교 부근 미용실에서 7만 원짜리 염색을 주문하면서 1만 원을 할인받기로 했는데 요금은 오히려 1만 원 더 비싼 8만 원이 나왔다.

미용실 주인은 항의하는 B씨에게 "좋은 약품을 써서 원래 9만 원인데 1만 원 깎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느냐. 돈 안 내려고 사기 치는 거냐"며 오히려 몰아세웠다.

파마와 염색을 한 C씨는 광고에 적힌 가격보다 2만 원씩을 더 내라는 것에 항의하다 "광고는 새치 염색을 말하는 거다.

네가 미용사냐"는 말을 듣고 쫓겨났다.

'세팅 파마 15만 원, 염색 5만 원, 클리닉 5만 원'이란 안내 문구를 보고 미용실에 들어간 D씨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미용실 쪽은 머리 하는 3시간 30분 내내 가격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가 불쑥 52만 원 결제를 요구했다.

이·미용실을 비롯해 대중음식점, 다방, 제과점 등의 요금은 1981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전면 자율화됐다.

그전에는 '협정 요금' 등의 이름으로 사실상 가격 통제가 이뤄졌다.

1976년부터 시행된 이들 업종의 '표시 가격'은 5차례 인상된 끝에 영업시설, 기술력, 재료비 등의 차이점을 고려해 업소가 요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됐다.

자율 요금제 실시 이후 요금은 지역별, 업소별, 시술 종류별로 천차만별 양상을 보인다.

특히 여성이면 누구나 이용하는 미용실의 들쭉날쭉한 요금 체계는 적지 않은 혼란과 함께 소비자들의 큰 불만을 낳았다.

가격이 적정한지를 두고 전국 곳곳의 미용실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동네 미용실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000 헤어'처럼 개인 브랜드를 앞세운 고급 미용실이 속속 등장하면서 미용 요금은 더욱 치솟았다.

대표적인 미용 시술인 파마만 하더라도 싼 곳은 몇만 원이지만 유명 미용실은 50만 원을 훌쩍 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자율 요금제라지만 가격 분쟁은 무작정 업주와 소비자에게 맡겨 둘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2011년 물가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공중위생업을 중심으로 한 실제 지불가격 표시제 정착 방안을 논의했다.

형식적인 가격표 대신 실제 지불 가격표를 게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2013년 1월부터 이·미용업소 옥외가격표시 실시 지침이 시행됐다.

영업장 안에 최종 지불 요금표를 비치하고, 면적 66㎡ 이상인 업소는 외부에도 요금표를 게시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미용실은 커트, 파마를 포함해 대표적 품목 5개 이상의 가격을 표시하도록 했다.

모발 길이, 사용 제품, 부가서비스 적용 여부, 서비스 제공자에 따른 가격 차이도 표시하게끔 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이 지침은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무용지물이 됐다.

가격을 표시하더라도 추가 요금을 빼고 기본요금만 게시하거나 가장 저렴한 품목만 안내해 시술이 끝난 뒤 지불하는 최종 요금과 큰 차이가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용요금 분쟁 해결을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도 나섰다.

권익위는 2013년 '미용가격 분쟁 예방 및 미용업소 위생 강화 방안'을 통해 미용요금 사전 정보 제공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과 고시를 개정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했다.

권고에는 최종지불 가격 게시 제도 보완과 함께 추가 요금 항목, 성별, 신분(학생·일반), 할인행사 대상 및 기간 등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권익위는 사전에 상세 주문내역서(계산서) 발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음식점의 '7천 원짜리 설렁탕 1인분, 6천 원짜리 된장찌개 1인분' 같은 계산서를 미리 발행함으로써 소비자 가격 선택권을 강화하고 분쟁 소지를 없애자는 뜻이다.

2014년 12월까지 개선을 주문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미용 시술 가격을 사전에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결제 단계에서도 세부 내역 없이 최종 금액만 고지하는 바람에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용 요금은 업소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만큼 비싸게 받더라도 강제로 가격을 조정하거나 행정처분을 할 근거가 전혀 없다.

행정지도를 통해 업소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가격 책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전부다.

끊이지 않는 미용요금 분쟁을 줄이려면 전문 기술, 브랜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미용업 고유의 특성을 인정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세영 서경대 미용예술학과 교수는 "미용 시술의 핵심은 전문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가격 책정의 부당성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며 "미용실은 음식점 메뉴판처럼 명확한 가격표시제를 도입하고, 소비자도 주문사항을 명확히 한 뒤 사전에 정확한 가격을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k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