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청 소속 특별사법경찰이 창신동 ‘짝퉁’ 비밀창고를 수색하고 있다. 이날 압수된 짝퉁 명품은 4800여개로 정품 가격으로 환산하면 74억원 규모다. 단속 공무원들이 압수한 물건을 부대에 넣어 쌓아보니 골목길이 가득 찼다. 중구청 제공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청 소속 특별사법경찰이 창신동 ‘짝퉁’ 비밀창고를 수색하고 있다. 이날 압수된 짝퉁 명품은 4800여개로 정품 가격으로 환산하면 74억원 규모다. 단속 공무원들이 압수한 물건을 부대에 넣어 쌓아보니 골목길이 가득 찼다. 중구청 제공
보름 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한 주택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10여명이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을 집주인에게 제시한 뒤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집 구석구석에서 루이비통 에르메스 프라다 등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해외명품 브랜드의 ‘짝퉁’(가짜상품) 가방과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은 동대문에 짝퉁 명품을 공급하는 판매업자의 비밀창고였다. 이날 압수된 물품은 총 4800여점에 달했다. 정품 가격으로 치면 74억원 규모다. 짝퉁 진원지를 밝혀낸 이들은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들이 아니다. 중구청 소속 특별사법경찰(특사경)들이다. 경찰처럼 단속과 수사, 송치 등의 권한이 있는 특사경은 해당 분야 경력이 10년 안팎인 베테랑 공무원 중에서 주로 뽑는다.

단속 대상 늘리는 특사경

서울시와 25개 구청에서 특사경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올해 2월 기준 서울시 소속 460명, 구청 소속 327명의 특사경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부정 식품이나 허위 원산지 표시, 가짜 의약품, 비행 청소년 등을 주로 단속한다. 지난해 8월부터 단속 대상에 불법 대부업과 가짜 화장품, 무등록 의료기기, 가짜 석유 등도 추가됐다.

서울의 각 구청은 지역 환경에 맞춰 특사경 단속 분야를 특화하고 있다. 중구청은 위조상품 단속전담팀을 가동 중이다. 명동과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등 관광지와 시장이 관내에 많기 때문이다. 소속 특사경은 39명으로 서울시내 구청 중 가장 많다.

지난달 창신동 짝퉁 압수수색을 위해 단속전담팀 5명이 한 달 넘게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A수사관은 “동대문시장 짝퉁 공급처를 파악하기 위해 새벽 3~4시까지 잠복하고 몰래 유통업자를 추적하는 생활을 반복했다”며 “한 달간의 노력 끝에 창신동 주택가에 숨겨진 비밀창고를 발견하고 불법판매업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년 한 해에만 짝퉁 판매 475건을 단속해 정품가 206억여원 규모의 짝퉁상품 3만3957개를 압수했다. 올해 단속건수는 5월까지 319건에 달해 지난해 실적을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대 상권과 유흥가가 밀집한 강남구청은 불법 대부업과 성매매업소를 집중 단속한다. 올 들어 지난달 31일까지 27곳의 불법성매매업소를 단속해 철거했다. 지난해 새롭게 추가된 불법 대부업과 관련해서 전단지를 불법으로 배포한 20명을 검거하는 실적도 거뒀다.

관내에 공장이 많은 성동구청은 환경오염물 배출 단속에 특사경을 특화하고 있다. 성동구청 소속 특사경은 28명으로 강남구청(24명)보다 많다. 지난해 11월 관내의 한 공장이 비 오는 틈을 타 폐수를 무단방류하는 현장을 포착하는 등 환경 분야에서 단속 성과를 내고 있다.

“고생만 하는 비인기직”

특사경의 생활은 고단하다. 단속 현장을 잡기 위한 잠복근무는 기본이다. 오토바이를 탄 불법 대부업 전단지 배포자를 추격하기도 한다. 짝퉁 비밀공장을 급습했다가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많다.

특사경이 가진 장비는 수갑뿐이다. 한 구청 소속 특사경은 “얼마 전 서울시 수사관이 불법대부업 사무실을 급습해 대부업자와 육탄전을 벌이다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며 “일반 경찰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절한 보호장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사경들은 업무 위험성이 높고 일반 공무원과 달리 휴일이나 밤낮 구분 없이 일해야 하는 데 비해 주어지는 혜택은 적다고 토로한다. 이들이 받는 혜택은 한달에 20만원인 특별사법경찰수당이 전부다. 잠복 중 식사비나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교통비 모두 수당으로 충당해야 한다. 일반 공무원 예산에 ‘수사비’라는 항목이 없어 경찰과 달리 비용을 지원받지 못한다.

공무원 사이에서 ‘고생만 하는 비인기 보직’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자발적으로 특사경에 지원하는 공무원은 많지 않다. 대부분 인사 발령을 통해 특사경이 된다. 임기는 3년 안팎이다. 한 특사경은 “임기를 마치면 다시 일반 공무원으로 복귀한다”며 “금전적인 혜택은 물론 인사상의 특전도 없다 보니 사명감 없이는 일하기 힘든 자리”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경찰과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수사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특유의 비밀스러운 수사 문화가 공조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 특별사법경찰

특별사법경찰은 특정 행정분야에 한해 경찰과 같은 단속, 수사권을 가진 일반공무원이다. 원산지 표시, 짝퉁(위조상품) 제조, 환경오염물질 배출, 불법 대부업 등을 단속한다. 광역자치단체와 법무부 국토교통부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1만60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소속 단체장이나 기관장이 제청하면 관할 지검장이 임명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