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교체 뒤 재부임·회사 인수 거치며 흐지부지…"무사안일이 빚은 참극"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낸 제품을 만든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문제의 제품 출시 이후 외국 연구기관에 흡입독성 실험을 타진했으나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25일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기존 제품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원료 '프리벤톨 R-80'이 물속에 부유물을 남긴다는 등의 이유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원료를 바꾼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을 2000년 10월 판매했다.

국내 한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가 시작되고 약 한 달이 지나 옥시 측은 흡입독성 실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옥시는 이미 제품 개발 때부터 PHMG의 흡입독성 실험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들었으나 생산을 강행한 뒤였다.

옥시 측은 2000년 11월∼2001년 1월 사이 미국과 영국의 연구소 두 곳에 실험 의뢰 가능 여부를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험은 진행되지 않았다.

이 원인을 놓고 원가 절감 등 여러 추측이 제기됐으나, 검찰은 관련자 조사 등을 통해 2001년 3월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의 옥시 인수를 전후로 회사 내부의 조직 변동에 따른 혼란 등이 작용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

제품 출시 당시 옥시의 의사결정권자로 14일 구속된 신현우 전 대표는 인수 직후인 2001년 4월께 교체를 앞두고 있었다.

외국인 대표이사가 그의 자리를 대신할 예정이었다.

검찰 조사에서 신 전 대표는 오래전이라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맞물려 실험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대표가 예정대로 부임했지만,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석 달가량 밖에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자 신 전 대표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이후에도 실험은 진행되지 않았다.

여기에 인수를 전후해 임원이 바뀌고 연구소 통폐합이 이뤄져 국내 연구소가 축소되는 등 회사 내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결국 직원들이 흡입독성 실험에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됐고, 해당 제품은 계속 판매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무사안일, 무책임, 무관심이 겹쳐져 빚어낸 참극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옥시 제품은 10년간 약 453만개가 팔렸다.

정부가 폐손상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한 인원은 221명인데, 177명이 옥시 제품 이용자다.

사망자도 90명 가운데 70명으로 가장 많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이보배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