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서 2천100억대 입찰방해 적발…업체 인·허가는 지자체

18일 경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발표한 경남지역 급식비리 최종수사 결과 적발된 급식업자들은 입찰방해부터 위장업체 설립까지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찰은 2천100억원대 급식비리를 저지른 47개 급식업체를 적발해 A업체 대표 강모(48)씨를 입찰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 낙찰 확률 높이려고 유령업체 설립
범행 수법을 살펴보면 강 씨의 경우 친인척 등 가족 명의로 5개의 유령 급식업체를 설립해 학교급식에 중복투찰했다.

이는 '추첨식'으로 선정하는 현행 학교급식 낙찰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현재 학교급식 낙찰제도는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도'로 전자입찰 방식이다.

한 급식업체가 입찰에 참가한다고 가정했을 시 이 업체는 전자인증서를 단 하나만 받을 수 있다.

이 급식업체는 입찰 금액의 87.745%보다 높은 금액을 입찰가로 써내야한다.

1천만원 짜리 입찰일 경우 아무리 못해도 877만4천500원보다 높은 금액을 써야하는 것이다.

참가 급식업체가 금액을 써 내면 이후 입찰은 '다수 추첨'이라는 독특한 단계로 넘어간다.

877만4천500원 보다 많은 금액 15개가 무작위로 선정되고 각 금액에는 1번부터 15번까지 번호가 붙는다.

한 급식업체는 1~15번 중 번호 두 개를 뽑을 수 있다.

그렇게 참가한 급식업체들이 번호 두 개씩 모두 뽑으면 그중 가장 많이 뽑힌 번호가 입찰가로 낙점된다.

이후 뽑힌 번호의 금액에 가장 가까운 액수를 써낸 급식업체가 최종 급식업자가 되는 것이다.

강 씨가 유령 급식업체를 여러 개 만든 이유도 여기 있다.

유령 급식업체가 많으면 하나의 번호에 '몰아주기'를 할 수 있고 그만큼 뽑힐 확률도 커지기 때문이다.

입찰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변수를 동원해 공정하고 투명한 급식업자 선정을 하고자 이와 같이 복잡한 방식을 채택했으나 이마저도 허점을 발견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방법으로 2011년 5월부터 작년 11월까지 1천84억원 상당의 학교급식계약을 낙찰받았다.

◇ 급식비리 업체 또다른 위장업체로 예산 가로채
강 씨는 또 2012년 농산품 전처리 업체를 위장 설립, 직원을 고용한 것처럼 꾸미고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일자리창출사업비 명목으로 1억6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추가로 적발됐다.

특히 평소에는 사무실을 전혀 운영하지 않다가 관리감독기관에서 현장점검을 오면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불러 작업복을 입게한 뒤 작업을 하는 것처럼 시늉만 내도록 지시해 단속을 피했다.

'지역제한'을 피하려고 유령업체를 차려놓고 식재료를 납품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취한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식자재 납품업자는 경남 고성지역 납품을 위해 고성에 주소를 둔 처제 명의로 위장업체를 설립했다.

이들은 유령업체에서 견적을 제출하는 것처럼 서류를 제출했고 실제 납품은 마산 소재 업체에서 식자재를 납품해 10억여원의 급식비를 가로챘다.

또다른 창원 업체는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에 기존 업체와 위장업체 둘 다 입찰서를 써내는 방식으로 61억 원 규모 계약건에 대해 입찰방해를 했다.

또 진주 소재 업체 2곳은 입찰을 담합해 40억 원 규모의 입찰방해를 했다.

이밖에 미신고 식품판매업체를 운영하면서 식품을 납품한 업체도 있었다.

김모(38)씨 등 7명은 관할 지자체 신고도 없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학교에 식자재를 납품해 24억7천만원의 이득을 봤다.

창녕의 한 고등학교 행정실장은 납품업자로부터 납품받은 양보다 서류상 납품량을 부풀려 대금을 지급한 후 차액을 되돌려받는 방법으로 6회에 걸쳐 760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 '비리규모' 놓고 갈등도…유령업체 걸러낼 장치 없어
경찰은 경남도의회 '도교육청 학교급식에 대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급식특위)'에서 수사의뢰한 87개 납품 업체 중 형사처벌이나 내사 진행이 가능한 곳을 선별해 조사를 했다.

애초 급식특위는 학교급식 전반에 걸쳐 비리 정황이 있는 700개 학교·87개 납품업체를 적발했고 발표했다.

수사의뢰 건수만 2만3천866건에 계약금액은 총 5천904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총 금액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발표 당시 일각에서는 '도의회가 금액을 과장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도 '특위가 침소봉대한다'며 박춘식 특위 위원장과 도의회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경찰 입건 대상만이 아니라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포함되는 금액까지 포함시켜 발표한 것"이라며 "발표 당시 모두 설명했는데 언론에서 총 액수만 부각하며 모두 비리 금액인 것처럼 보도해 그런 측면에서는 섭섭하다"고 해명했다.

예상원 부위원장은 "당시 특위 내부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이견이 많았으나 발표를 강행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급식과 관련된 모든 액수를 더해 발표한 것뿐 그 자체가 비리금액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도교육청은 현재로선 뾰족한 재발방지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수사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급식 납품이 잘되기만 하면 도교육청 차원에서 조사를 하기 힘들며 입찰 당시 유령업체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도 따로 없다"며 "납품업체 인허가를 내주는 주체가 지자체인 만큼 앞으로 지자체와 협의해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home12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