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연장 '꼼수'…소송 거는 외국인 근로자 급증
경기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이집트인 A씨(27)는 지난달 말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난민 신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낸 ‘난민 인정 신청’에 대한 결과였다. A씨는 신청서에 “2011년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옹호하는 집회에 두 차례 참석한 전력이 있어 이집트 정부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정치적 박해’의 구체적인 실체를 제시하지 못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A씨는 ‘다음 단계’로 난민 전문 간판을 내세운 변호사를 찾아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해도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재판을 받는 동안에는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기 위한 ‘꼼수’였다. A씨는 앞으로 최소 6개월 이상 한국에서 일할 수 있다.

한국 체류기간을 늘리기 위한 편법으로 소송을 이용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늘고 있다. 1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은 2013년 171건에서 2014년 409건, 2015년 1076건으로 매년 2배 이상씩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는 3월 말까지 507건이 법원에 들어왔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2000여건에 달할 것이라는 게 법원 측의 예상이다.

난민 관련 소송이 급증하자 서울행정법원은 2월22일 전담재판부를 기존 4개에서 8개로 늘렸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소송을 남발하면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독교인 여자 친구를 사귀는 바람에 본국에 돌아가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등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소송을 내는 외국인이 많아 판사들이 사실 관계를 파악하느라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덧붙였다.

체류연장 '꼼수'…소송 거는 외국인 근로자 급증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인종·종교·국적·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근거를 내놓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한국에서는 1994년부터 올 1월까지 1만6356명이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583명(3.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난민인정 신청 건수는 2014년 2896건에서 지난해 5711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는 3월 말에 벌써 1729건에 이르고, 연말까지 약 7000건에 달할 것으로 법원은 내다보고 있다.

난민 심사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년6개월 정도다.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면 다시 6개월~1년가량이 소요된다. 난민 신청과 불복 소송을 모두 진행하면 체류기간을 최소 2년가량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난민 신청을 한 날로부터 6개월 이후에는 취업도 가능하다. 취업 전 6개월 동안은 정부로부터 생계비로 매달 41만8400원(1인 기준)을 받는다.

소송이 늘자 외국인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난민 소송을 맡는 변호사와 행정사, 법무사들이 호황을 맞았다. 한 변호사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패소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소송을 건다”며 “‘어떤 사유를 적어야 재판이 길어지느냐’고 묻는 일도 많다”고 귀띔했다. 난민 소송을 대행하는 한 행정사는 “지난해부터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난민 관련 소송이 늘어나 주요 수입원이 됐다”며 “난민 신청부터 불인정 불복 소송까지 패키지처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