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신동원 휘문고 교장. / 변성현 기자
26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신동원 휘문고 교장. / 변성현 기자
[ 김봉구 기자 ] “강남 소재 고교는 ‘정시형’, 즉 수능형 학교다.” 입시설명회를 찾은 학부모들에게 이같이 단언하는 전문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근거는 해당 고교의 대입 진학실적이다.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는지와 합격생 중 수시와 정시 비율을 따져 내린 결론이다.

지난 26일 서울 대치동 휘문고에서 만난 신동원 교장(사진)은 이런 외부 시선은 편견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휘문고만 봐도 사실 수시에 강한 학교다. ‘강남 고교=정시형’이라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사각지대가 있다”라고도 했다.

무슨 얘기일까. ‘서울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잡아 결과가 다소 왜곡됐다는 설명이다. 신 교장은 “지난 입시에서 휘문고 학생 126명(중복합격 기준)이 의대에 합격했다. 대부분 서울대에 갈 수준의 학생들인데 통계에서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대 입시가 수능을 중요하게 평가해 정시로 많이 뽑는 점도 착시현상의 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휘문고의 경우 10여년 전부터 학교 자체적으로 논술을 집중 연구, 내신 4등급 학생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논술전형으로 합격할 만큼 수시에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는 수시전형 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철저히 준비할 방침. 주요대학들이 학종을 대폭 확대한 탓이다. 다양한 비교과활동까지 골고루 평가하는 학종은 학생부와 추천서를 작성하는 학교와 교사의 경쟁력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 자율형사립고인 휘문고는 여기에도 강점이 있다고 신 교장은 자평했다.

“자사고에 지원하는 중학생들은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를 냅니다. 평가는 우리 선생님들이 해요. 자소서와 추천서, 학생부를 어떻게 써야 좋은 평가를 받을지 보는 눈이 생기죠. 이런 점을 잘 활용하면 수시에서 상당한 실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서울시교육청 진로진학지원단 설립을 주도한 진학지도 전문가로 통한다. 30년 전 평교사로 휘문고에 부임해 연초까지 진학교감을 지냈다. 학교가 110주년을 맞은 올해 3월 교장에 취임했다.

신 교장은 수시 축소 주장에 대해 "수시전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 변성현 기자
신 교장은 수시 축소 주장에 대해 "수시전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 변성현 기자
- 수시 체제로 체질을 바꿨단 건가.

“교육과정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약 3년 전부터 많이 바꿔왔다. 과학교과 이수단위를 바꾼 게 대표적이다. 자연계의 경우 물리I과 II를 모두 필수교과로 지정했다. 자연계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물리를 알아야 한다. 대학에서도 그렇게 보는 편이고.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휘문고 교육과정이 필요한 전공역량을 잘 가르친다’는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손질해나가고 있다.”

- 학종은 교사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학교 선생님들의 능력이 뛰어나다. 학생부 작성 전문가다. 직접 평가를 해본 게 강점이다. 자연히 평가 대비도 잘할 수 있다. 학생들의 특징과 장점, 계발하거나 보완할 점 등을 세세하게 학생부에 기록한다. 자사고 효과인 셈이다. 수업방식도 바꾸고 있다. 수시로 공개수업을 연다. 수업방식이나 평가방법을 개선하는 순기능이 있다.”

- 주요대학의 학종 확대를 어떻게 보나.

“학종 자체는 결과보다 과정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좋은 전형이다. 하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거의 똑같은 조건의 학생 A와 B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지원했다. 3년간 둘을 지켜본 교사 입장에선 함께 붙거나 떨어지는 게 맞다. 그런데 A는 붙고 B는 떨어진다. 예측이 힘들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입시전형이라고 본다.

학교나 교사에 따라 입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학생이 담임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학부모들이 학종을 정말 불안해한다. 합격·불합격 기준을 모르겠다는 거다. 중1부터 고3 때까지 6년을 관리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어한다. 가장 객관적이라 생각되는 방법, 이를테면 수능 성적으로 평가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 너무 복잡하니 단순화하자는 건데.

“35년 교단생활 동안 이렇게 교육체계가 복잡한 적이 없었다. 1982년 평준화 시절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학력고사 준비 잘하고 자율학습 감독 충실히 하면 됐다. ‘이 학생은 서울대 가겠다, 저 학생은 연세대 넣으면 되겠다’ 그런 계산이 섰다. 지금은 아니다. 서울대 입시에 맞춰 준비한 학생은 떨어지면 연대에 못 간다. 대학마다 선발방식이 달라서 그렇다.”

- 그래서 ‘수시 축소, 정시 확대’ 주장이 공감대를 얻는 것 같다.

“그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학종을 대폭 확대하기엔 아직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고. 학부모들이 회의감을 느끼니 정치권에서 그걸 파고들어 수시 축소 얘기도 나오는 것 같다. 당장 수시를 축소하기보다는 수시전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객관성을 보장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신 교장은 대입 진학실적보다 '큰 사람'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 변성현 기자
신 교장은 대입 진학실적보다 '큰 사람'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 변성현 기자
- ‘의대 효과’가 정시형 학교라는 오해를 불렀다고 했는데.

“휘문고 하면 ‘의대 잘 보내는 학교’라는 인식이 있다. 과학고 포기하고 온 학생들도 꽤 된다. 서민 교수(단국대 의대)가 특강하러 온 적 있는데 200명 넘게 몰렸다. 의대 지망 학생 수가 그 정도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번 입시에서 전교 1~20등 가운데 서울대 정시에 지원한 학생은 2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의대에 지원했다.”

- 서울대 합격자 통계 위주로 봐서 그런 내용은 잘 몰랐다.

“사각지대가 있다. 수시로 70~80% 뽑고 정시로 20~30% 뽑는데 오히려 서울대 수시보다 정시 합격생이 훨씬 많았으니, 그 수치만 보면 정시형 학교로 여길 수 있다. 평균적으로 서울대에 20명 내외, 의대에 60명 정도 보낸다. 그렇게 치면 80명 정도는 서울대에 합격할 학생들로 볼 수 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 ‘착한 의사 만들기 프로젝트’는 의대 지망생을 위해 만든 것인가.

“워낙 의대 선호도가 높아 진로교육 차원에서 프리(pre) 메디컬스쿨 프로그램으로 마련했다. 의사 윤리, 의사 정신 등을 1년에 10차례 내외 특강한다. 단순히 공부 잘한다고 의대 가선 곤란하다. 의사가 적성이 맞는지가 중요하다. 제자 가운데 의대에 가 의사 자격증까지 딴 뒤에 적성이 아니라면서 딴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더라.

강남 자사고에 자식을 보낼 정도의 학부모라면 교육열이 높고 자수성가한 경우가 많다. 의사란 직업이 그런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의사는 특수한 사명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도 의사들이 많이 감염되지 않았나. 의사가 되려 한다면 고교 때부터 그런 헌신이나 봉사 정신을 익혀야 한다. 올 여름방학엔 의료봉사단도 만들 계획이다.”

- 진학지도 전문가로 통한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대입은 ‘어느 대학에 몇 명 넣겠다’가 아니다. 목적이 돼선 안 된다. 고교 교육과정을 잘 만드는 게 우선이다. 대입은 그 결과로서 따라오는 거다. 대학들에게 ‘휘문 출신은 탐난다’, ‘휘문고 학생들은 고교 때 교육을 잘 받은 학생이다’ 이런 평가를 받고 싶다. 35년간 교사로 지켜본 결과 대입에만 매달린 학생은 대학에 가서 풀어지더라. 인생 전체로 보면 대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 장기적 관점에서 보자는 당부로 들린다.

“학생들은 100년씩 살아갈 사람들이다. 한 해 입시 실적에 매달리는 게 얼마나 의미 있겠나. 남의 말 경청하고 친구 배려하고 주변 사람 존중하고 웃어른 존경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인성을 갖추면 다음은 창의성이다. 첫째 독서, 둘째 글쓰기, 셋째 토론과 발표 위주에 역점을 두고 가르치려 한다. 역설적으로 대학들도 성적만 보지 않고 그런 걸 평가한다. 입시교육이 아니라 ‘큰 사람’을 길러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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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