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경틈에 진입해 출입증 훔쳐-문에 적힌 비번으로 문열고-비번 해제프로그램으로 PC켜

제주의 한 대학에 다니는 평범한 복학생 송모(26)씨는 마음이 급했다.

송씨는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 학생이었다.

많은 또래 대학생들처럼 안정적인 공무원을 목표로 삼았다.

학과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만 기회를 주는 '국가직 지역인재 7급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시험일은 3월5일이었다.

전남 농촌에서 제주로 유학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그는 합격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며 의지를 다졌다.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올인' 했다.

졸업한 동기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캠퍼스에서 강의실과, 도서관, 기숙사를 오갔다.

압박감은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심해졌다.

1년 더 '공시족'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리던 송씨는 '나쁜 맘'을 먹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훔치려고 서울로 향했다.

2월28일, 시험을 관리하는 인사혁신처가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주위를 맴돌며 청사안으로 들어갈 방법에 골몰했다.

첫 번째 관문은 청사 후문이었다.

청사 방문자는 건물 외부 민원실에서 신원 확인을 받은 뒤 담당 부서 관계자가 동행하면 후문을 통해 들어가게 돼 있다.

송씨는 짧은 머리를 한 청년 무리가 신분증 대조 없이 후문 민원실을 통과하는 장면을 봤다.

외출·외박에서 복귀하는 청사경비대 소속 의무경찰들이었다.

이들은 외출·외박증만 방호원에게 보여주면 통과할 수 있었다.

20대 중반인 데다 마침 짧은 머리를 한 송씨는 이들 틈에 섞여 2월 28일 건물에 처음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청사 안을 돌아다니던 송씨는 1층 체력단련실 탈의실에서 공무원 신분증을 훔쳤다.

신분증만 있으면 인사처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문은 디지털 도어록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송씨는 일단 공부에 매진해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가혹했다.

가채점 결과는 과락(40점)을 간신히 넘는 45점이었다.

1년 더 고생하는 길을 택했더라면 한 차례 정부청사 침입은 먼 훗날 술자리 무용담이 될 수도 있었다.

송씨는 그러나 또 한 번 가선 안 될 길을 가게 된다.

그는 지난달 6일 다시 청사에 침입했다.

OMR 답안지를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인사처 사무실이 있는 15∼16층을 한동안 배회한 그는 한 사무실 벽면에 숫자가 적인 것을 발견했다.

청사 청소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적어둔 도어록 비밀번호였다.

일단 제주로 돌아간 송씨는 지난달 24일 다시 서울로 와 청사에 들어갔다.

가방에 슬리퍼를 담아 와 신고 다니며 내부인 행세까지 했다.

"인사처 직원인데 사무실 열쇠를 달라"는 그에게 방호원들은 별 의심 없이 열쇠를 내줬다.

비밀번호가 걸린 탓에 열쇠는 문을 여는 데 쓸모가 없었다.

최종 관문이던 디지털 도어록은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허무하게 뚫렸다.

채용관리과 사무실 출입문 모서리에 조그맣게 4자리 숫자로 된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마침내 사무실 진입에 성공한 송씨는 채용 담당자 컴퓨터에 접속을 시도했으나 여기에도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송씨는 이틀 뒤인 같은 달 26일 비밀번호 해제 프로그램을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아 다시 사무실에 들어갔다.

마지막 관문이던 비밀번호가 풀리자 자신의 성적을 조작하고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추가했다.

그는 인사처가 홈페이지에 관례적으로 띄우는 시험 관련 재공고를 보고 자신의 범행이 발각돼 재시험이 치러진다고 오해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그는 이달 1일에도 청사에 들어가 채용관리과 사무실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인사처가 내부적으로 성적 조작을 확인한 상태였고, 출입문에 적혔던 비밀번호는 이미 지워져 그냥 걸음을 돌려야 했다.

침입 사실을 뒤늦게 안 인사처는 1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한민국 행정의 심장인 청사의 보안을 뚫은 공시족은 곧 붙잡혔고 6일 구속됐다.

경찰 관계자는 "잠정적이지만 송씨가 조력자 없이 단독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변지철 기자 a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