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굶기고 빨래·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은 의붓딸 몫
여행 중 집 안 CCTV 감시하다가 집 청소 안 하면 학대
의붓딸 학대 40대 계모 '징역형…친부는 "몰랐다"


중학생인 A(14)양은 지난해 8월 30일 온 가족이 인천의 한 펜션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고서 강원 춘천의 집에 혼자 남았다.

계모 B(41) 씨, 계모가 데리고 온 의붓언니(17), 계모와 아빠 사이에서 낳은 이복 남동생(10) 등 3명은 A양을 홀로 남기고 여행을 떠났다.

계모는 자신의 친아들과 친딸만 데리고 가족 여행을 떠난 셈이었다.

A양의 친아버지는 직업상 같이 사는 날보다 집을 떠나 있는 날이 많아 이때도 출근한 상태였다.

사실상 A양은 가족 여행에서 혼자만 소외됐다.

계모는 여행지에서도 집에 남긴 A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었다.

집 안에 CCTV를 설치해뒀기 때문이다.

계모는 CCTV로 지켜보다가 A양이 집 안 청소를 하지 않거나 장시간 집을 비우면 '집안이 돼지우리 같은데 청소는 하지 않고 어디 갔다 왔느냐'며 욕설했다.

이 벌로 A양은 같은 날 0시부터 오전 7시까지 거실 바닥 걸레질 등 가사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는 다용도실 세탁기 앞에서 가만히 서 있으라는 벌도 받았다.

계모의 학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계모는 여행에서 돌아온 날 오후 3시께 A양이 벌을 제대로 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A양의 머리를 세게 밀치고 얼굴을 꼬집었다.

종아리도 10여 대 때렸다.

지난해 9월 3일에는 자신의 친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A양에게 '동생을 돌보라'며 수학여행도 가지 못하게 했다.

같은 달 초께는 훈육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가위로 A양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허벅지를 꼬집고 머리를 때리는 등 학대했다.

또 같은 달 21일 오후 8시께 A양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운동을 나서려던 계모는 단백질 분말 가루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서 이를 추궁했다.

A양은 '배가 고파서 단백질 가루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자 욕설과 함께 단백질 분말 가루 통을 A양 머리에 덮어씌운 계모는 주먹과 발, 옷걸이 등으로 A양을 수차례 때리기도 했다.

평소 계모가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아 A양은 늘 배가 고팠다.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계모가 가끔 끼니를 굶겼기 때문이다.

친부가 없을 때는 가족과 함께 밥상에 앉지 못하게 하고 늘 혼자 밥을 먹게 했다.

온 가족이 삼겹살을 먹을 때도 A양은 따로 차린 밥상에서 먹어야 해 의붓언니와 이복동생처럼 배불리 먹지 못했다.

A양은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학급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아주 왜소했다.

지난해 9월 23일 오전 8시 20분께 계모는 학교에 가려는 A양을 세워놓고 다짜고짜 가방과 소지품 검사를 했다.

신발 깔창 밑에서 1천 원짜리가 발견되자 계모는 또 A양의 얼굴과 허벅지를 꼬집고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렸다.

A양은 계모가 용돈으로 준 5천 원을 아끼고 남은 1천 원이라고 말했지만, 계모는 A양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여겼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계모의 학대는 범죄 사실에 나타난 것보다 더 심각했다.

계모는 빨래와 밥 짓기, 집 안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의붓딸인 A양에게 시켰다고 한다.

A양은 지난해 7일가량 학교에 결석했는데, 대부분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느라 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A양은 식모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게 주변인들의 진술이었다.

그사이 계모와 의붓언니는 헬스클럽을 다니며 미용과 건강유지에 힘썼다.

A양의 학대 사실은 결석이 잦은 A양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몸에 멍 자국을 발견한 교사가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교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고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A양의 친부도 조사했다.

그러나 A양의 친부는 비상근무가 많은 직업상 집을 자주 비워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진술해 기소하지 못했다.

A양도 친부의 학대여부에 대해서는 일절 진술하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A양이 애써 친부를 보호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A양을 신체적·정서적으로 수차례 학대한 계모 B 씨는 상해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춘천지법 형사3단독 이다우 부장판사는 계모 B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또 보호관찰과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 80시간의 수강을 명령했다.

이 부장판사는 "학대와 상해가 지속해서 가해진 점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의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동종 전과가 없고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 외에 2명의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학대 피해자인 A양은 친부와 계모에게서 분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재판 과정에서 계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한 검찰은 1심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j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