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살인범도 잡아줄까요?…아직은 '글쎄'

빅데이터가 범죄를 예측할 것이라는 기대와 첨단기법이 숨은 단서를 찾아내는 수사 사례가 종종 거론된다.

슈퍼컴퓨터 1천200대의 계산능력을 지닌 알파고는 상대의 변칙적이고 저돌적인 공격에도 기계다운 냉철함을 잃지 않고 '인간계' 대표 이세돌 9단을 수세에 몰아 압승을 거뒀다.

그렇다면 알파고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고성능 안드로이드가 흉악한 범죄자를 척척 잡아낼 수 있을까?

광주 서부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의 숨가빴던 36시간을 복기하면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은 인간 직감과 부지런한 두 다리의 조력자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 아직은 맞을 것 같다.

지난 23일 오전 6시 40분께 광주 서구 광천동 교회 주차장에서 머리가 심하게 훼손된 남성의 시신이 출근길에 나선 시민에게 발견됐다.

'교회 주차장'과 '훼손된 머리'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전달된 신고 내용은 기괴한 살인현장을 떠올리게 했다.

현장을 둘러본 형사들은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낡은 도심 주택가의 후미진 공터에서 돌로 머리를 심하게 맞아 사망한 이번 사건이 다툼에서 시작된 우발적 살인이라고 직감했다.

하지만 단층주택과 다세대주택에 둘러싸인 사건현장에는 흔한 CCTV 하나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다.

CCTV 분석과 통신수사가 일상이 된 형사들은 수사 초기 1980년대 골목 풍경에 머물러 있는 광천동 주택가에서 살인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A씨의 생활 거점이었던 여관과 직업소개소를 중심으로 탐문을 벌이던 경찰은 흥미를 끄는 요소 하나를 포착했다.

직업소개소에 등록된 근로자 10여명의 신원을 조회한 경찰은 A씨와 이모(49)씨의 각각 독특한 이력을 확인하고, 이들 사이에 잦은 다툼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는 '호기심'을 느꼈다.

형사들은 때마침 A씨와 이씨가 22일 밤 11시 30분께 술취한 걸음걸이로 나란히 이동하는 모습이 녹화된 CCTV 영상을 찾아냈다.

119구급대원이 전한 "시신에 체온이 남아있었다"는 증언에 기대 23일 새벽 5시 전후로 사망시각을 추정했던 과학적 추리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씨는 평소와 다르게 A씨의 시신이 발견된 23일에는 일을 마치고 일당 일부를 수수료로 떼어주러 직업소개소에도 들르지 않았다.

주변인을 탐문한 형사들은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죽였다.

이 전화가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잠적한 이씨를 시신 발견 8시간 30여분만에 살인 용의자로 특정했다.

인터넷을 하지 않으며 신용카드 한 장 없는 이씨는 요즘 범인들과 달리 디지털 기록 매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전원이 꺼진 휴대전화도 위치가 추적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가 과거 막노동을 하며 전남 목포에서 생활한 전력에 주목했다.

직업소개소를 중심으로 목포 시내를 샅샅이 검문하던 형사들은 24일 저녁 6시 40분께 용당동에서 이씨를 수사 착수 36시간 만에 긴급체포했다.

이날 오전 목포에 도착한 이씨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소개받은 일을 마치고 나서 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씨는 "평소 A씨와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술에 취해 시비가 붙었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25일 말다툼을 하다 A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이씨를 입건했다.

현장에서 직접 수사를 지휘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과학수사도 아니고, 주변인 탐문에 의존한 전통기법의 수사도 아니다"며 "첨단기법으로 수집한 증거가 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추리와 인과관계만으로 범인이 잡히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