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혐의로 조사받던 경찰에 총기 지급 놓고도 논란

서울 동대문경찰서 휘경파출소에 근무하던 이모(47) 경위가 22일 권총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의 총기 관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이 경위가 사망 전날 이전 근무처에서 불거진 비위 의혹으로 경찰청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알려져 이 경위에게 총기를 지급한 것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총기 관리 규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잊을만하면 또…" 끊이지 않는 경찰 총기사고
잊을만하면 다시 터져 나오는 경찰의 총기 관련 사고 소식에 국민은 불안감을 토로한다.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 합동 검문소에서 박모(55) 경위가 38구경 권총을 박모(21) 수경(당시 상경)에게 향하게 하고 방아쇠를 당겨 박 수경이 가슴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박 경위는 휴대하던 권총 원형 탄창의 첫 칸이 비어 있는 줄 알고 장난으로 방아쇠를 당겼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한방'에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총기 특성상 탄창 첫 칸이 비어 있었더라도 박 경위가 권총으로 장난을 친 것 자체가 심각한 안전 불감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2014년 10월에는 경기도 광주에서 흉기를 든 남성과 대치하던 경찰관이 총기를 발사해 이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김모(30) 경장 또한 공포탄을 발사하려 했지만, 실탄이 발사됐다고 진술했다.

작년 5월에도 인천 삼산 경찰서 실내 사격장에서 고장 난 총기를 조교가 점검하던 중 총알 1발이 발사돼 자칫 인명피해를 낼 뻔했다.

경찰관이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적지 않다.

2008년 9월에는 서울 종로경찰서의 한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한 경찰관이 신변을 비관해 유서를 써놓고 사무실에서 권총을 발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해 7월에는 인천 중부경찰서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관이 38구경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 비위 혐의로 조사받는 경찰관에 총기지급…적절성 '논란'
숨진 이 경위는 작년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과에서 풍속업소 업무를 담당하다 올해 2월 동대문서로 발령받아 휘경파출소에 배치됐다.

경찰은 이 경위가 서울청 근무 당시 업소에 단속 정보를 흘려준 혐의로 숨지기 바로 전날 경찰청 본청 내부비리 전담수사대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비위 혐의가 있는 경찰관에게 총기를 수거하지 않아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장비관리 규칙은 직무상 비위 등으로 징계 대상이 되거나 형사사건의 조사를 받는 경우, 사의를 표명한 경우에 총기와 탄약 사용을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 평소 불평이 심하고 염세 비관하는 자 ▲ 주벽이 심한 자 ▲ 변태성벽이 있는 자 ▲ 가정환경이 불화한 자 ▲ 기타 경찰기관의 장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자 등도 총기와 탄약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이 경위는 피의자 신분으로 형사사건의 조사를 받는 경우에 해당해 경찰이 총기 휴대를 방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청 내부비리수사대는 "조직 내부적으로 조치가 필요할 만큼 어느 정도 혐의가 드러나고 나서야 지휘관에게 통보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어서 통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사안을 동네방네 떠들며 수사할 수는 없고 피의자의 인권 보호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장비관리규칙상 총기 소지 부적합자에 해당하는 형사사건 조사 대상자가 포함돼 있어 양쪽 입장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자로 조사받는 단계에서 권총을 압수했다면 최소한 총기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총기는 그 특성상 한방에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큰 위협이 되므로 엄격하게 통제해 범죄 기회를 박탈하고 예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이어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 수사박탈 등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경찰관에게 총기를 압수하는 시점은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도 관련 규칙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단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하는 단계"라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규칙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하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