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료상 과실로 감염증 발병…병원 측 70% 책임"

주사기 재사용 등 간호조무사의 비위생적인 시술로 박테리아 등에 감염된 환자들이 병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이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김종원 부장판사)는 서울의 한 의원에서 통증 치료 주사를 맞았다가 질병에 집단 감염된 김모씨 등 14명이 병원장 A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씨는 환자들에게 각 1천만∼3천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전문의 자격이 있는 A씨는 2009년부터 간호조무사인 B씨와 함께 서울에서 '00의원'을 운영했다.

B씨는 이 의원에서 허리, 어깨, 무릎 등 통증으로 찾아온 환자를 진찰하고 척추 등의 불균형을 교정한다며 통증 부위를 압박하는 '추나요법'을 했다.

또 주사기를 이용해 통증 부위에 여러 성분의 주사제를 투여하는 무면허 의료행위도 했다.

이곳에서 2012년 4∼9월 주사를 맞은 환자 243명 가운데 김씨를 비롯한 61명에게 비정형 마이코박테리아 감염, 화농성 관절염, 결핵균 감염 등 집단 감염증이 발병했다.

A씨는 수사를 받고 기소됐으나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등 의료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되고 환자들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업무상 과실치상)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B씨가 아닌 A씨 본인의 과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환자들이 병원장 A씨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 법원은 감염 과정에 병원 측의 과실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환자들의 감염이 이 병원의 주사제 투여 과정에서 병원균이 침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병원 탕비실 내 냉장고에는 쓰다 남은 다수의 주사제가 음료수와 함께 보관돼 있을 정도로 약품 보관상태가 매우 불량했다"며 "주사제 조제 및 잔량 보관 과정에서 병원균이 혼입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또 "심지어는 동일한 주사기를 이용해 여러 부위에 주사제를 수차례 투여한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외부에 존재한 병원균이 시술자의 손이나 환자의 피부에 묻은 뒤 주사침과 함께 환자의 피부 내로 주입됐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에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무면허 의료행위를 주도한 B씨의 관리자로서 지는 민사 책임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만, 환자들에게 이미 있던 증상이 손해 발생에 일부 영향을 줬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병원 측의 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환자들의 각 증상과 피해 정도에 따라 배상액이 다르게 산정됐으나 많게는 총 손해액의 70%인 2천만원에 위자료 1천만원을 더해 총 3천만원이 배상액으로 결정됐다.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지난해 서울 양천구의 한 의원에서 C형 간염 환자가 집단 발병한 데 이어 최근 강원도 원주에서도 유사 사건이 발생해 향후 피해자들이 소송을 낼 경우 이번 선고 결과가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