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다, 가볍다…이미지 홍수 시대, 쑥쑥 크는 웹소설
“다시 소설만 써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권경목 씨는 ‘나이트골렘’ ‘세븐메이지’ 등의 장르소설을 쓴 작가다. 그의 소설은 주로 ‘기갑물’로 분류된다. 이름도 생소한 이 장르는 로봇이 등장하는 국내 판타지 소설의 특수한 카테고리다. 독자층이 두터울 리 없다. 글을 쓰다 먹고살기 어려워 다른 직업을 가졌던 권씨는 최근 다시 전업 소설가로 돌아왔다. 웹소설의 성장으로 장르소설 독자층이 넓어져 소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기갑물 소설을 집필 중이다.
웹소설 원조로 평가받는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 영화 속 한 장면.
웹소설 원조로 평가받는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 영화 속 한 장면.
웹소설이 급성장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매출이 해마다 2~3배씩 뛰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출판 관련 업계의 변화가 미미한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네이버 웹소설과 조아라·문피아·북팔 등을 모두 합쳐 2014년 웹소설 전체 매출은 약 400억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에는 80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에는 1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년에 ‘억대’ 수입을 챙기는 웹소설 작가도 이미 수십 명이다.

동영상과 이미지가 판을 치는 시대에 ‘텍스트’가 주목받는다는 사실이 희한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웹소설 몇 편을 읽어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좋다면, 어쩔 건데?” “내가 싫다고 말하려고.” 로맨스·공상과학(SF)·판타지 등 장르소설 위주의 웹소설은 대화체 위주의 속도감 있는 전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매체를 닮은 묘사가 기존 문학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다. 신문 지면에 나가는 기사와 ‘카드뉴스’의 화법이 다르듯, 같은 텍스트라도 웹소설은 훨씬 가볍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웹툰이나 동영상과 달리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다는 점도 웹소설 ‘빅뱅’을 이끄는 차별화되는 요인이다. 지난 설 연휴(6~10일) 동안 네이버 웹소설의 ‘로맨스’ 장르에 올라온 작가지망생들의 소설만 900여편에 달한다. 중학생부터 중학생 자녀를 둔 주부까지 연령대·직업도 다양하다.

소설의 내용뿐 아니라 언어로 표현되는 형식도 중요하다고 믿는 문학평론가들에게 웹소설은 다소 지루한 분석 대상일지 모른다. 아직까지는 이야기의 ‘구조’에만 천착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서 그렇다. 수백 년 전부터 쓰여온 진부한 도식이 자주 눈에 띈다. ‘재벌가 상속남과 평범한 소녀’로 대변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이 한 가지 사례다.

중국에선 웹소설이 한국보다 더 인기가 높다. 텐센트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에서 록인(lockin:소비자가 경쟁사로 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 서비스로 웹소설을 제공하면서 전국적으로 독자층이 크게 늘었다. 인기작을 연재하는 일부 20~30대 웹소설 작가는 스타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을 받기도 한다.

웹툰과 마찬가지로 웹소설도 원천 소재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웹소설 작가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귀여니’(이윤세)가 활동한 시기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그가 쓴 ‘늑대의 유혹’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배우 강동원의 초기작이니까 원소스멀티유스(OSMU)용으로서 웹소설 역사는 꽤 오래됐다. 무게감을 덜어낸 텍스트는 분 단위 동영상, 웹툰과 함께 지하철에서 소비할 수 있는 킬링타임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