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대안제시 못 하면 조직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어"

19일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후 노동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과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노동개혁 입법 추진에 반대한다는 것이 한노총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이러한 정책이 '쉬운 해고'와 노동조건 악화로 직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노동조합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반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한노총의 모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비판의 핵심은 한노총이 과연 노동개혁의 대안을 제대로 제시했느냐로 모인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업종 확대, 양대 지침 등 논란이 되는 사안에서 한노총은 '반대'로 일관했다.

이러한 정책들이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며 반대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459만명 중 파견, 하도급 등 간접고용 근로자는 92만명(20%)에 달한다.

여기에 직접고용 근로자의 22.9%에 이르는 기간제 근로자까지 합치면, 대기업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한노총은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파견 허용업종을 확대하는 등 정부 정책이 시행되면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한다.

비정규직 확대가 아닌 정규직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노총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 부분 타당하지만,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는 허점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안산 지역 근로자 A(39)씨는 "안산·시흥 지역에서는 근로자가 고령자이든 업종이 뿌리산업이든 간에 이미 파견근로가 성행하고 있다"며 "법이 개정돼 파견 허용업무가 확대돼도 합법 여부의 차이가 있을 뿐 현실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말대로 안산, 인천, 평택, 화성 등 수도권 공단에서는 파견 근로가 성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노총이 파견 확대에 대한 '반대'로만 일관하면 주장의 선명성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파견근로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파견 확대에 대해 노사정 공익전문가들은 '상용형 파견'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파견업체가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파견이 없는 기간에는 숙련 훈련을 받으면서 수당을 받게 하는 모델이다.

일본에는 이미 상당히 보급됐다.

상용형 파견에 대한 현실성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대안이 제시된다면 파견근로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노총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만 한다면 한노총의 존재 이유인 노동자 권익 보호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결' 위주의 노동계와 정부의 관계를 '대화와 타협'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업종 확대, 양대 지침 등 논란이 되는 사안마다 정부는 강행하고 노동계는 반대하는 패턴이 반복돼왔다.

여기에서 과감히 벗어나 양측이 대안을 제시하면서 개선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찾는 합리적인 노정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허용업종 확대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지만 노동계와 경영계가 충돌없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절충안을 만들어냈다"며 "우리도 이러한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도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노총이 대타협을 파기하자 정부도 양대 지침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는 '졸속 지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달 30일 마련한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양대 지침을 지지하는 목소리보다는 지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훨씬 컸던 것도 사실이다.

통상임금 때처럼 졸속 지침은 결국 '소송대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19일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조급증, 노동계는 무조건 반대의 자세를 버릴 것을 촉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정은 대화와 타협으로 노동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이러한 자산이 지켜질 수 있도록 노동계와 정부 모두 대결 의식과 조급함을 버리고 한발짝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