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고교까지 무상교육하겠다고?
새해 벽두부터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서울 등 7개 시·도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 누리예산이 편성되지 못하는 등 ‘보육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경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원아가 줄어 보육교사를 해임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생겨나고 있다.

누리과정 갈등의 핵심은 결국 누가 돈을 낼 것이냐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지난해보다 1조8000억원 늘었고 지방자치단체 전입금도 늘어나니 시·도 교육청이 편성하라”고 압박했다. 반면 교육청들은 대통령 공약이니 중앙정부가 별도로 재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일부 시·도 의회는 당파적 이해로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예산까지 전액 삭감하면서 혼란을 부채질했다.

무상복지에 빚 급속히 늘어

누리과정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취임하면 내년에 고교 무상교육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조5000억원이 드는 초·중학교 무상급식과 4조원이 소요되는 누리과정에 이어 2조5000억원 규모의 고교 무상교육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지어진 학교 건물들이 노후화해 교체 비용이 몇 조원이 들지 제대로 추산도 못하는 터에 또 다른 무상교육 화두를 꺼냈다.

누리과정 사태가 빚어진 것은 한국 경제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이뤄져 세수가 증가했다면 내국세의 20.27%로 정해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무상복지에 필요한 재원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이란 얘기다.

더불어 빚은 늘고 있다. 지방교육채는 2013년 2조9000억원에서 올해 14조6000억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이 주요한 원인이다. 중앙정부 부채는 사정이 더 딱하다. 정부 예산안에 따른 올해 국가채무는 644조9000억원으로 국가채무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어선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12년 말 443조1000억원이던 나랏빚이 4년 만에 201조8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중학교 무상교육에도 20년 걸려

교육과 보건은 개인의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가 소득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력한 정책적 지원 분야다. 세계은행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교육과 보건에 많은 역량을 할애하는 것도 저개발국가의 자력 성장을 도울 수 있어서다. 유아교육은 출발 단계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게다가 올해 교육예산 비중은 정부 지출의 13.8%로,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제시한 목표(각 국가는 정부 지출의 15~20%를 교육에 투자해야)에 크게 못 미친다. ‘교육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이 ‘인천선언’의 최소 목표인 15%에 맞추려면 올해에만 4조8000억여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재원을 조달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무상교육을 늘리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국방 등 다른 분야 재정을 줄이고 교육재정을 늘려야 할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중학교 무상교육은 도서 산간 벽지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전국에 적용하는 데 20년이 걸렸다”는 교육 전문가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할 때다.

정태웅 지식사회부 차장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