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일정에 따라 한국 정부가 마련한 ‘법률시장 최종(3차) 개방안’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등 주한 외교사절 3명과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는 “정부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은 외국 로펌의 한국 진출을 지나치게 제한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공식 서한을 이번주 내 공동명의로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보낼 예정이다.
[Law&Biz] "한국 법률시장 개방안 부적절"…미국·EU 대사들, 공식서한 전달
서한에는 리퍼트 대사를 비롯해 찰스 존 헤이 주한 영국대사, 윌리엄 패터슨 주한 호주대사가 이름을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EU 대표부도 서한의 공동 명의자로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3국 대사관과 주한 EU 대표부 관계자는 지난 7일 이 위원장을 찾아가 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구두로 전달했다. 서한 전달은 이를 공식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의견서에 ‘법무부가 제출한 법 개정안은 외국 로펌의 한국 진출을 지나치게 제약해 자유시장경쟁을 추구하는 FTA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을 방침이다. FTA 협정문에 따르면 법률시장 3차 개방 시 외국 로펌은 한국 로펌과 함께 조인트벤처(JV·합작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국내 법률시장은 FTA 이행 일정에 따라 EU 국가에는 오는 7월부터, 미국에는 내년 3월부터, 호주에는 2019년 1월부터 3차 개방된다.

외국 대사들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JV에 참여하는 한국 로펌은 업무경력이 3년 이상 돼야 하고, 외국 로펌은 JV의 지분을 49%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한 내용 등이다. 이런 제한은 외국 로펌이 한국에서 JV를 세우는 걸 방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FTA에 따르면 3차 개방 때 법률시장을 충분히 열도록 돼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고 얘기한다”며 “FTA 합의에 없는 4차, 5차 개방을 임의대로 설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원회는 지난 7일 법무부 안을 거의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 위원장은 이날 리퍼트 대사 등과 면담한 뒤 법안의 전체회의 상정을 보류했다. 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항의 전체회의 상정이 보류되는 건 이례적이다.

이 위원장은 “FTA 후속 이행 법안을 상대국의 공감대 없이 진행할 수는 없다. 법무부가 왜 이런 안을 추진했는지 의문”이라며 “조만간 리퍼트 대사 등을 다시 만나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