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가명에 혼인신고 않고 남편 9년간 속여
어른들 잘못이 낳은 끔찍한 아동학대

'인천 11살 딸 학대 사건'은 과도한 빚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다가 주거가 불안정해지자 쌓인 스트레스를 초등학생 딸에게 풀면서 시작됐다.

딸을 학대한 30대 아버지의 동거녀이자 피해아동의 계모는 과거 이혼 사실을 숨기기 위해 9년간 가명을 쓰며 재혼한 남편과의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인천지검에 따르면 피해아동 A(11)양의 아버지 B(32)씨는 9년 전인 2007년께 C(35·여)씨와 재혼했다.

친구 생일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만나 서로 호감을 가졌다.

2006년 12월 A양의 생모인 첫 아내와 협의 이혼한 직후였다.

B씨는 새 아내가 될 여자를 "결혼할 사람"이라며 어머니에게 인사시켰다.

재혼이라 결혼식은 따로 하진 않았고 혼인신고도 아내에게 맡겼다.

B씨는 규모는 작지만 매달 180만∼200만원 가량을 주는 작은 회사에서 꾸준히 일했다.

그러나 씀씀이가 큰 C씨가 시어머니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수천만원을 쓰고 시댁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생활비로 쓰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돼 300여만원에 이르자 휴대전화 대리점은 실제 명의자인 C씨의 시어머니를 형사 고소했고, 날벼락을 맞은 시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를 찾아 나섰다.

2012년 9월 손녀가 다니던 부천의 한 초등학교로 찾아간 시어머니는 "아들이 내 인감도장을 훔쳐 집을 팔고 도망을 갔다"고 하소연하며 손녀가 어디로 이사갔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아들과 며느리는 한 달 전 월세로 살던 부천의 아파트에 모든 짐을 놔둔 채 야반도주한 상태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경기도 가평 용추계곡 인근 펜션 등 전국 휴양지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A양도 함께였다.

C씨는 수사기관에서 "시어머니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할까 봐 두려워 남편과 함께 부천을 떠났다"고 진술했다.

떠돌이 생활도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서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2012년 9월 서울 강북구 수유리의 한 모텔에 매달 월세를 내는 '달방'을 얻었다.

달방에는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하며 알게 된 D(34·여)씨도 합류했다.

D씨도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남성에게서 거액을 빌려썼다가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던 중이었다.

B씨가 부천에서 몰래 도망치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D씨가 모텔 월세 등 생활비를 댔지만 쪼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계모 C씨는 생활고와 주거불안 스트레스를 의붓딸인 A양을 학대하는 것으로 풀었다.

처음엔 B씨도 아내의 학대를 말리다가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

갈등이 반복되면서 B씨도 친딸을 때리고 굶기기 시작했다.

사실상 도주하다시피 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던 이들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내 줬다.

제대로 풀지 못하면 나무로 된 30㎝ 길이의 구두주걱으로 손바닥과 엉덩이를 때렸다.

A양은 틀린 개수 대로 맞았다.

한 번에 20대를 맞은 적도 있었다.

부부싸움과 학대를 말리던 D씨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대를 학습했다.

지난해 12월 12일 A양이 세탁실 창문으로 혼자 집에서 탈출하기 전 노끈으로 아이의 손을 묶은 것도 그녀였다.

검찰 관계자는 "모텔 작은 방에 성인 남녀 3명과 아동 1명이 함께 사는 기형적인 생활을 했다"며 "주거불안에 생활고까지 겹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피해아동에게 옮겨갔다"고 혀를 찼다.

B씨도 C씨가 자신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을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

한번 이혼한 전력이 있는 C씨는 '최00'라는 가명을 쓰고 남편과 시어머리를 속였고, 혼인신고를 하면 전력이 드러날까봐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C씨는 "2000년대 초반 첫 남편과 살던 중 가출해 호적 정리가 안 돼 있는 상황이어서 가명을 썼고 재혼한 남편과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인천지검 형사3부(박승환 부장검사)는 11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B씨를 구속 기소하고 친권상실을 청구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를 받는 C씨와 D씨도 구속 기소했다.

인천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A양에게 긴급 지원금 500만원을 지급했다.

또 향후 심의위원회를 열고 현재 A양이 치료를 받는 병원의 입원비와 심리치료비, 생계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