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소 제기 이어지면 해 넘겨야 결론…보육대란 불보 듯

광역의회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임의 편성 등에 반발한 시·도 교육청의 재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모호한 법 규정 때문에 그 처리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시·도 의회가 서둘러 본회의에 상정하면 재의 처리는 이달 중에도 가능하다.

그러나 작심하고 시간 끌기에 나선다면 재의가 되든 안 되든 오는 6∼7월에나 결론이 나게 된다.

재의 결과에 불복, 시·도 교육청이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면 임의 편성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해를 넘길 것이 뻔해 누리과정 예산 운용을 둘러싼 혼란이 장기화할 수 있다.

누리과정 예산의 재의를 요구한 시·도 교육청은 전국에서 모두 5곳이다.

인천시교육청과 충남도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6개월치 예산 561억원과 536억원이 각각 시도의회에 의해 임의 편성됐고, 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반대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598억원과 482억원을 각각 삭감당해 재의를 요구했다.

충북도교육청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6개월치인 411억9천만원이 강제 편성된 데 반발, 지난 8일 도의회에 재의를 요청했다.

서울 등 일부 교육청도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 재의를 요청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해당 시·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교육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재의 요구가 이뤄졌지만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의 해법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재의 처리까지 수개월 걸릴 수 있고, 처리 결과에 불복한 시도교육청이 대법원 판단까지 요구하다 보면 해를 넘길 수도 있다.

결국 재의 처리 시기에 따라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집행까지 수개월 걸릴 수 있고, 시·도교육청들이 대법원 판단까지 집행을 유보하겠다고 버티면 해를 넘기게 돼 보육대란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재의 처리 기한 6∼7월…시·도의회 의지가 '변수'
지방자치법 시행령상 시·도의회는 재의 요구서가 접수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재의에 부쳐야 한다.

문맥상으로 보면 이달 중 재의 결과가 나올 듯 싶지만 이 시행령에는 '폐회 중 또는 휴회 중인 기간은 이를 (10일 이내의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같은 회기 중 본회의와 본회의 사이를 휴회 기간으로, 회기가 바뀌어 다음 본회의가 열릴 때까지를 폐회 기간으로 보고 있어 회기가 아닌 본회의 기준으로 개최 일수를 계산해 10일째까지 재의 요구안을 처리하면 된다는 게 각 시·도 의회의 판단이다.

의회별로 본회의 개최 횟수가 조금씩 다르지만 본회의가 통상 한 달에 1∼2회 열리는 점을 고려하면 재의 처리 기한은 6∼7월께가 된다.

그러나 이 기한에 대한 교육부의 판단은 시·도 의회와 다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자치법 시행령 어디에도 재의 처리 기한을 본회의 개최 일수로 따져야 한다는 문구는 없다"며 "회기 시작 후 '10일 이내'에 재의에 부쳐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부 판단이 옳더라도 지방자치법 시행령에는 신속한 재의 처리를 강제할 조항이 없다.

권고나 훈시 규정이라는 점에서 시·도 의회의 의지에 따라 재의 처리가 빨라지거나 늦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시·도 의회, 유불리 따져 재의 처리 시기 정할 듯
새누리당 소속인 이언구 충북도의회 의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도교육청의 재의 요구를 신속히 처리할지, 법적 기한이 꽉 차는 7월에 처리할지를 충분히 검토한 후 재의에 부치겠다"고 말했다.

충북의 경우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도의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 도교육청의 철회 요구를 힘의 논리로 거부할 수 있다.

다만 도교육청이 한 푼도 반영하지 않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6개월치 강제 편성한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는데 어떤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꼼꼼히 따져본 후 처리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재의 요구서를 받은 충남도의회는 의장단 간담회를 통해 내주 입장을 정할 계획이다.

이곳 역시 새누리당이 도의회 내 다수당이다.

새누리당이 마음먹기에 따라 재의 처리 시기가 당겨질 수도, 늦춰질 수도 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강제 편성이 정당했다는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 거리낄 것 없이 재의 처리에 나설 수 있지만, 반대로 보육 문제에 대한 일각의 정부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끌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재의 처리 시기는 지역에 따라, 어느 정당이 다수당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재의 '실효성' 논란…부결돼도 예산 자동 수립 안 돼
각 시·도 의회는 해당 교육청의 재의 요구안을 표결 방식으로 처리한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시·도 의회가 의결했던 기존 예산안 원안대로 확정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광역의회가 강제 편성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각 시·도 교육청이 예산 집행을 거부,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면 적법성을 둘러싼 법정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대법원 판결이 연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집행이 사실상 물 건너갈 수 있다.

찬성이 3분의 2보다 적어 시·도 교육청의 요구가 수용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무효가 되더라도 상황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에서 절반 나뉘어 어린이집 누리 과정으로 강제 편성된 예산이 자동으로 시·도교육청이 원래 편성했던 것처럼 유치원 누리과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효화 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내부 유보금(예비비)으로 편성된다.

이 내부 유보금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통해 용처를 찾게 된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한 푼도 편성되지 않았다며 형평성을 문제 삼아 일부 광역의회가 전액 삭감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역시 재의에서 뒤집혀도 곧 부활하지 않는다.

역시 내부 유보금으로 남게 된다.

시·도 교육청은 강제 편성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든, 전액 삭감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든 원상회복을 위해 추경예산 편성을 서두르려고 하겠지만 시·도의회의 벽을 넘어야 한다.

예산안 편성과 상임위 심사, 예결위 심의, 본회의 표결을 거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부 지역은 당장 이달부터 누리과정 예산 지원이 끊기는 상황이어서 재의 요구든 대법원 제소든 당장 학부모 발등에 떨어진 보육대란의 불을 끄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전국종합=연합뉴스)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