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고, 치밀하게, 치유하다…KBS 일일극 '우리 집 꿀단지' 중장년층서 인기
“시급만 세다면 이빨이라도 닦아 드려요.” “일이 없어 피곤하지 일할 땐 피곤하지 않아요.” “저만큼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온 가족이 모인 저녁시간대(월~금 오후 8시20분)를 숨 막히는 ‘알바(아르바이트) 각축장’으로 만든 KBS 드라마 ‘우리 집 꿀단지’(연출 김명욱, 극본 강성진·정의연)의 오봄(송지은) 대사다. 취업에 번번이 고꾸라지고 알바로 연명하는 ‘오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등 다섯 가지를 포기한 2030세대)의 절규이기도 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취업은 계약직조차 하늘의 별 따기다. 드문드문 한 알바도 대행사 수수료를 떼고 나면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접시 닦기와 청소는 기본. 밤 12시 넘어 건물 청소하기, 엘리베이터 고장 난 고층에 술병상자 올려다 놓기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알바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드라마는 학자금 대출과 최저시급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며 대학을 졸업한 청춘들의 사회 적응기를 그려낸다. 배경은 국내 최고 전통주 전문기업 풍길당. 주인공 오봄에게는 꿈의 기업이다. 절대미각으로 까다로운 전통주 시음 테스트까지 합격했는데도 아버지 장례식으로 연수에 불참해 합격이 취소된 곳이기도 하다.

22세 알바 인생 오봄은 5000만원의 빚까지 떠안고 있다. 꽃미남 유학파 대학생에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일푼 천애 고아가 된 강마루(이재준) 역시 비슷한 처지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굶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이 주인공들이 험한 세상에서 정도를 지키며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40대 이상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일일드라마라 ‘막장’ 설정도 빠질 수 없다. 알고보니 주인공 오봄은 풍길당 대표가 20년 전 잃어버린 딸이다. 친모는 일벌레로 살아가고, 친부는 두 번째 부인과 20년간 동거해 다른 딸까지 낳았다. 계모는 오봄에게 떠넘긴 대출빚 이자를 내놓으라 성화다.

친언니인 풍길당 후계자 아란(서이안)은 봄의 취업과 생존을 가로막는 악역으로 거듭난다. 아란의 약혼자인 풍길당 매니저 태호(김민수)는 열심히 살아내는 봄이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 얽키고설킨 관계들은 봄과 마루가 탄탄해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간다. 독설과 증오와 무관심으로 지내왔던 사람들이 풍길당을 중심으로 가족이 돼가며 서로 보듬고 배려해서다.

드라마의 중심축은 풍길당 대표 배국희(최명길)다.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천연발효 전통주 장인답게 속임수와 지름길에 능한 기성세대로부터 청춘들을 보호하고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극의 배경인 풍길당은 오포세대가 정착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국가이고, 배국희는 정당한 사회시스템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균 시청률 22%, 일일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는 ‘우리 집 꿀단지’는 청춘 이야기인데도 60대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60세 이상이 25.8%, 50대가 11.5%, 40대가 4.4%(시청률 조사회사 TNMS 기준)인 것을 보면 오포세대의 부모 세대인 60대에게는 드라마이기 전에 현실인 것이다.

이주영 < 방송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