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성과급에 웃고 울지만…그거 아세요?
2015년도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일찌감치 시작된 송년모임을 대부분 마무리하고,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는 직장인이 많다. 2015년 마지막 ‘김과장&이대리’에서는 각양각색의 세밑 직장 풍경을 살펴봤다. 연말 직장인들의 행복과 불행은 회사의 부침(浮沈)과 무관치 않다. 상당수 기업에 2015년은 힘든 한 해였다.

저조한 실적을 낸 기업 구성원들은 희망퇴직 등으로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속에서 벌써 내년을 걱정하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개선된 실적을 낸 기업의 직원들은 두툼한 연말 성과급 봉투를 기대하며 기분 좋은 연말을 보내고 있다.

“세계 경기 둔화, 미국 금리인상 후폭풍 등의 여파로 내년엔 올해보다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란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들지 않았던 때가 언제 있었던가.

‘한여름 폭풍우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다는 나무 백일홍처럼 힘든 시기를 버티다 보면 여름의 끝도 와 있을 것’(이성복, ‘그 여름의 끝’)이다. 올 한 해 다른 여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견뎌낸 김과장 이대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직장인 파이팅!

수억 보너스 기대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

한 대형 벤처캐피털 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심사역(37)은 올 연말 보너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의 팀이 수년 전 장외시장에서 투자했던 벤처기업들이 올 들어 잇따라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대표적 기업이 지난달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더블유게임즈다. 그의 팀은 2년 전 더블유게임즈에 투자해 올해 기준으로 원금의 20배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매년 두둑한 보너스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회사는 올해 역대 최고 영업이익을 경신할 게 확실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임직원 성과급 지급을 준비 중이다.

박 심사역은 3억원가량의 보너스를 받게 될 것으로 주변에서 예상하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에 수억원의 성과급을 받는다고 하면 대기업이나 은행 증권사에 다니는 대학 동기들이 부러워한다”며 “일도 보람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직업으로 택하길 잘한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최모 과장(35)은 올 한 해 재계에서 최고의 ‘스타’ 기업으로 떠오른 한미약품에 다니고 있다. 그는 연말을 앞두고 지인들로부터 다른 여느 해보다 많은 안부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지인들은 한미약품이 올해 8조원대의 기술수출 성과를 낸 것과 관련, “그런 정보가 있으면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느냐”며 서운함을 털어놓기도 하고, “성과급을 많이 받을 테니 한턱 크게 쏘라”는 등 다양한 요구사항(?)을 내놓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아직 성과급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 과장은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최근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이 한 인터뷰에서 “성과가 나오면 미래를 위해서도 당연히 보상이 따라야 한다”며 “회사의 경사인데 크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기 때문이다.

최 과장은 연말 성과급이 나오면 지금 타고 있는 소형차를 아이들을 태우기 좋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바꾸려고 마음먹고 있다. 최 과장은 “성과급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우리 회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는 데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며 “요즘엔 회사 가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오너 공백에 연말도 뒤숭숭

식품회사를 주력 계열사로 하는 한 그룹 직원들은 성과급에 대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오너가 사법처리를 받으면서 공백이 2년여간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 그룹 주력 계열사에 다니는 이모 과장(38)은 “실적만 놓고 보면 최근 1~2년은 상당히 많은 보너스가 나와야 정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올해에도 연말 보너스를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그룹은 인사 문제로 직원들 사기도 떨어져 있다. 대표이사는 물론 본부장급 임원들이 3년째 승진을 하지 못하면서 인사적체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장은 “회사 안팎에서 승진 대상자로 점쳐졌던 인사들의 승진이 좌절되면서 연말 송년회가 사라지거나, 크게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 8월 최태원 회장이 특별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SK그룹의 연말 분위기는 활기가 넘친다. SK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서울, 인천, 울산, 경기 이천 등 전국 주요 전통시장에서 지난 21~23일 주요 계열사들이 일제히 송년회를 열었다.

최 회장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직원들이 송년회를 한 지난 23일 통인시장과 광장시장을 찾아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최 회장이 송년회 장소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감히 말이나 붙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최 회장이 소탈하게 먼저 다가와 회식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고 말했다.

“송년이 송년 같지 않아요.”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의 지두남 경장(33)은 요즘 평소보다 긴장한 상태에서 근무하고 있다. 주점이 밀집해 있는 홍대 일대는 연말이면 술을 마시러 오는 직장인과 젊은 층이 몰리면서 치안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지구대 직원들의 근무 시간도 늘어난다. 크리스마스이브(24일)나 금·토요일 밤에는 평소의 2배에 가까운 직원이 지원근무를 한다. 관내 편의점이나 금은방 등 현금을 다량 취급하는 업소를 대상으로 특별 집중 순찰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작년 초 이 지구대에 온 지 경장은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올해에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하는 등 약간의 여유도 생겼다. 그는 “연말 야간근무를 하면서 길거리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내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게 좋고, 민원인들이 ‘고맙다’는 말을 해 줄 때마다 보람차다”며 활짝 웃었다.

LG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김모 대리(32)는 입사 후 처음으로 송년을 맞아 곧 4박5일 연말 휴가를 떠난다. LG그룹의 몇몇 계열사는 지난 25일부터 시작해 연초까지 최장 10일을 쉰다. 김 대리는 “항상 연말 모임으로 바쁜 송년을 보냈었는데, 올해엔 조용히 가족들과 지낼 수 있게 됐다”며 “송년이 송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