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결정하는 통상임금…노사합의 '신뢰' 깨뜨린다
대법원이 26일 한국GM 사무직 근로자의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지만 이 회사가 통상임금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업적연봉 소급분을 지급하는 것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낳는지 2심(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판단해야 한다. 2심에서 패소한 측이 또다시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도 높다.

게다가 한국GM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만 10여건에 달한다. 소송건마다 대법원까지 간다면 회사는 30번 이상의 소송전을 치러야 한다. 소송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하루빨리 통상임금의 범위와 소급청구 가능 여부를 법으로 명확히 정해 현장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락가락 판결로 소송만 늘어”

2013년 12월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의 법리를 정리했지만 통상임금 문제는 여전히 수많은 기업에 골칫거리다. 노사 합의로 정해왔던 문제가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 판단을 반드시 받아야 할 이슈로 확대됐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락가락하는 법원의 판결이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특히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제시한 ‘고정성(근로자가 특별한 조건을 달성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지급할 것)’을 두고 하급심이 엇갈린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지난 7월 서울의 시내버스회사인 삼양교통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8월 ‘지급일 기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10월 부산지방법원이 르노삼성자동차 사건에서 재직자 지급 요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본 반면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자동차 사건에서 매월 15일 이상 근무자에게 지급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비슷한 상황에서 한 기업은 지고 또 다른 기업은 이기는 경우가 발생하다 보니 ‘일단 소송부터 제기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으로 통상임금 명확히 정해야”

대법원이 근로자의 통상임금 소급 청구를 제한하는 법리로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도 법원마다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 합의가 있는 경우에 통상임금을 소급 청구하는 것이 회사 경영의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개념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과 2심은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연간 인건비 증가분이 80억~100억원이라는 점에선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1심은 경영상 어려움을 부정한 반면 2심은 인정했다.

이날 한국GM 사건을 판결한 대법원은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만 판시했을 뿐 신의칙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신의칙은 파기환송심에서 보면 된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한국GM 생산직 근로자 일부가 제기한 소송에선 서울고법이 지난달 30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해 매년 416억원을 추가로 지급하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다”며 신의칙을 적용했다.

지난 9월 노·사·정 합의 직후 통상임금을 ‘명칭에 관계없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사전에 정한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이 개정안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두 달 넘게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