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노조규약 개정 정부 요구 수용 불가 입장
정부·국회 압박하며 교원노조법 개정 염두

서울고법이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28일 합헌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합법노조의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부가 전교조에 '법외 노조'를 통보한 근거가 되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아있지만, 헌재의 이번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어서 전교조의 행로에 잔뜩 먹구름이 드리웠다.

전교조는 26년 전인 1989년 5월 28일 참교육 실현과 사립학교 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결성됐다.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인 1999년 합법노조의 지위를 공인받았으나, 다시 법외노조라는 가시밭길을 걷게 될 위기를 맞게 됐다.

◇ 전교조, 노조규약 개정 불가 입장
고용노동부는 노조규약을 개정하라고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시정명령을 내린뒤 전교조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2013년 10월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

해직 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노조규약이 교원노조법 2조를 어겼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헌재는 이날 결정과 관련 "해고된 교원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미 설립신고를 마치고 정당하게 활동 중인 교원노조의 법률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법원의 판단 영역이라는 점도 밝혔다.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 재량의 범위에 있는지는 법원 판단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다.

따라서 전교조가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법외노조가 될지는 서울고법에 계류 중인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결과에 달리게 됐다.

이런 가운데 전교조가 노조규약을 개정함으로써 소송과 무관하게 합법노조 지위를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교조의 일관된 입장으로 볼 때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교조는 지난 2013년 10월 조합원 총투표에서 68.59%의 높은 찬성률로 해직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고용노동부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의한 바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현 지도부가 과거 조합원 총의로 결정된 사안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전교조는 이날 헌재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전교조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동 3권을 쟁취해 합법 지위를 되찾고 말겠다"고 밝혔다.

'해직자 조합원 배제'를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전교조는 "결정문을 정밀하게 분석해 오는 6월 1일 더 분명한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 국제단체와 연대해 대정부 압박…교원노조법 개정 기대
전교조는 우선 교사의 노동기본권 인정을 요구해온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등과 연대해 우회적으로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는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인권이사회,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등은 그동안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정부에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라며 압박을 가해왔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작년 3월 결사의 자유위원회를 열어 정부에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조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등 수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를 통한 압박 역시 당장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제기구의 요구가 권고 수준에 그칠 뿐 실질적으로 한국 정부에 제재를 가하는 등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ILO 회원국이지만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에 관한 87호 협약과, 공공부문에서의 단결권 보장 등에 관한 151호 협약 등을 비준하지 않았다.

다만, 국제사회의 주요 일원임을 자임하는 정부로서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헌재의 이번 판결이 전교조의 합법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은 아니다.

쟁점이 된 교원노조법 2조를 국회 논의를 통해 개정하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문제가 된 교원노조법 개정을 위해 시민사회에 연대한 대국회 투쟁을 일단 염두에 두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13년 10월 대표발의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은 관계 법령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검정·수여하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이면 해직 여부를 떠나 누구든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는 별다른 진척 없이 계류 중이다.

헌재 판결로 야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의견이 모아질 경우 국회에서 교원노조법 개정을 통한 전교조의 합법노조화 노력이 재추진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러나 국회 의석 구조와 야당의 의제설정 동력, 헌법의 최종 해석기구로서의 헌재 결정이 갖는 권위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움직임이 곧바로 교원노조법 개정 추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당분간 상당히 낮아 보인다.

따라서 전교조 지도부는 일단 여론과 국회 논의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국회 투쟁과 시민사회·국제단체 등과의 연대 등 외곽 투쟁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관측된다.

◇ 정부 압박 본격화하나…전교조 영향력 약화 불가피할 듯
정부가 헌재 판결을 발판으로 대 전교조 압박을 강화하면 전교조는 더욱 수세에 몰릴 수 있다.

이미 정부는 지난달 24일 집단 연가투쟁에 참여한 교사들을 전원 징계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헌재 판결을 근거로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전교조가 패소가 확정되면 노조 전임자 복귀 명령과 더불어 사무실 임대 보증금, 각종 교육지원금 등의 중단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교조가 법외노조의 길을 가게 되면 전교조로서는 조합원을 끌어모을 동력이 더 약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계속돼온 정부의 강한 압박 정책과 지도부의 정치투쟁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교사들이 이탈해 전교조 조합원 수는 2005년 9만900여명에서 현재 5만3천여명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다.

조합원이 줄면 압력단체로서 각종 정부 정책에 대한 견제가 더 어려워진다.

교섭단체로서의 합법적 지위를 계속 인정받지 못해 정부를 상대로 교원의 근로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는 데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